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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궤변이영란 정치부장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어린 양을 만났다.

옳거니 바로 잡아먹자니 어쩐지 양심이 찔렸던 늑대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자기가 먹을 물을 더렵혔다고 양에게 트집 잡는 일이었다.

“너 때문에 내가 먹을 물이 더러워졌다”

늑대의 시비에 어린 양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아니에요. 늑대 아저씨가 있는 곳에서부터 흐르는 시냇물이 아래 쪽에 있는 저 때문에 더럽혀졌다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에요. 저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잖아요”

어린 양의 반박에 궁색해진 늑대는 말꼬리를 돌렸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너 작년에 우리 아버지가 사냥꾼에 총에 맞아 돌아가실 때 비웃었던 녀석이지? 너 같이 무례한 녀석은 혼줄이 나야 해”

늑대의 억지에 어이가 없어진 어린 양은 열심히 자신을 변론했다.

“아니에요. 아저씨. 저는 작년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더 이상 둘러 댈 핑계가 떠오르지 않게 된 늑대는 명분이고 뭐고 마음이 급해졌다.

늑대는 “난 더 이상 자기만 잘났다는 위선자들은 용납할 수 없어. 너같이 잘난 척하는 녀석들만 없다면 이 세상이 훨씬 살기 좋아질거야”라며 어린 양을 잡아 먹어 버렸다.

광우병 파동과 관련 MBC PD 수첩 작가의 이메일 공방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솝우화의 한토막이 떠올랐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 글을 통해 "나의 평상시 언행과 선호와 성향이 범죄가 아님에도 국가기관에 의해 검증받는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국민 대다수가 이메일을 사용하는 요즘, 이번 사건은 국민 대다수에게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또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검찰이 이메일 내용을 공개한 것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다. 수사의 본질은 PD수첩의 왜곡 보도 여부이지 제작진의 평상시 대화, 정치적 선호, 이념적 성향이 아니다. 작가의 이메일 공개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진정성 담보를 전제로 남 의원의 용기있는 발언을 적극 지지한다.

어떻게든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생떼를 쓰는 궤변들이 창궐하는 현상을 지켜봐야하는 시대적 우울이 아프다. 기존의 상식과 법치조차도 더 이상 버팀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소시민의 앙가슴을 압박하는 시대적 상황이 참으로 버겁다.

우리에게 민주와 자유에 대한 추억이 있기나 했나 싶게 탐욕스런 힘들이 내세우는 발톱 앞에서 정의와 정직 이런 낱말들이 꽃잎처럼 무기력하게 스러지고 있다.

꿈이었으면 싶은 일들이 자꾸만 눈 앞에 현실이 된다.

PD 수첩 사례가 부디 불쌍한 ‘어린 양’의 횡액으로 마감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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