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보다 ‘고백’을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3-12-15 19: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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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드디어 불법대선 자금 정국의 전면에 나섰다.

그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의 불법대선 자금은 대선후보였던 제가 시켜서 한 일이며 전적으로 저의 책임으로, 제가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고 밝혔다.

그가 이같은 결단을 결정하기까지 결코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뒤늦기는 했으나 일단 환영할만하다.

정치권 역시 그의 자진고백과 검찰출두가 그동안 정치권에 만연됐던 불법행위 근절의 계기로 작용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노회한 정치인의 침몰을 바라보는 착잡함에도 불구하고 미진함은 여전히 남는다. 그의 사과가 질적 수준으로 볼 때 상당히 미흡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은 한나라당 불법자금 수수의 핵심인물인 최돈웅 의원에 대한 수사가 미처 다 끝나지도 않았고, 더구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잠적해버린 한나라당 당직자들 때문에 불법자금의 전체적인 규모도 파악되지 않은 단계다.

따라서 이 전 총재는 먼저 ‘모두 내 잘못’이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불법 대선자금 규모와 용처를 자신이 아는대로 낱낱이 밝혀 국민적 의혹을 먼저 해소해야 옳다.

이 전 총재는 이전에도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언제 알았느냐 몰랐느냐 하는 것은 책임을 지는데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가 오히려 국민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이 전 총재가 진심으로 책임 질 생각이 있다면 최 의원과 잠적해 버린 주변 인물들을 설득, 하루빨리 검찰에 출두하게 하고 검찰 수사가 조속히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의 책임이 불법 대선자금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으며, 설사 책임진다고 하더라도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응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더구나 이 전 총재가 불법대선자금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돼있는지도 모른 채 그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행법상 불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국민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

지금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불법 대선자금의 ‘진실’이다.

과연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거기에 이전 총재가 어떻게, 또 어느 정도나 깊게 관여했는지 그 점을 알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그에게 책임을 묻든지 처벌을 하든지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이라도 이 전 총재가 지난 대선 당시의 잘못을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할 의도가 있다면 우선은 본인부터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검찰 수사에 적극 협력, 모든 의혹을 털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평소 이 전 총재가 외쳐왔던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이 전 총재의 사심없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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