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주장도 ‘용기’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3-12-24 19: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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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한 공무원이 자신의 부당한 전입명령 인사에 대한 무효확인 및 취소 소청 심사를 청구, ‘무효’ 판결을 받아 냈다.

상명하복체계로 움직이는 공무원 조직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사건의 당사자는 서울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 사무관 정모씨.

정씨는 지난 9월, 16년 째 근무해왔던 강남구에서 한강시민공원사업소로 전출됐다.

단 한번도 강남구를 떠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던 정씨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더구나 인사권자인 강남구청 측은 사전에 단 한마디 상의나 동의 절차를 구하지도 않았다.

이번 인사는 공무원 경력 35년째로 강남구에서만 16년째 근무했고 정년을 4년 앞두고 있는 그에게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쫓기듯 전출을 강요받을 만큼 스스로 잘못한 일이 없다 생각에 평생 명예와 자긍심으로 공직이라는 외길을 걸어왔던 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방 5급 공무원 변모(46)씨가 대구 중구청장을 상대로 낸 진정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위원회 측은 “본인 동의 없는 공무원 전출인사는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며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지방공무원법 관련 규정의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단체장의 인사전횡문제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막을 방도에 대해 무기력증을 느껴왔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감사원의 감사에서도 인사분야는 객관성의 부족 등을 이유로 아예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아래 분연히 일어선 정씨의 선전포고는 ‘참다운 용기’라는 측면에서 칭송받을 만 하다.

그의 용기가 그동안 속수무책이었던 단체장의 인사권 남용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지레 포기할 수 도 있었지만 끝까지 의지를 관철시켰던 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공무원 전체의 문제라고 인식한 때문이라고 정씨는 말한다.

실제로 그동안 자치단체장의 인사권 남용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린 공무원들의 수가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이번 판결은 그의 말처럼 단체장의 부당인사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이를 감수하는 것을 당연시 해왔던 공무원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가 매우 클 것이다.

사실 제도개선을 통해 단체장의 인사권 비리와 남용을 막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결국 인사비리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힘은 바로 내부고발과 투쟁을 통한 공무원 내부의 힘이다. 공무원 스스로 떨치고 일어서는 길 뿐이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공무원 사회에서 입을 열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를 보여준 정씨에게 다시 한 번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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