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4-02-01 20: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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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누군가 마셔야 할 독배라면 내가 떳떳이 마시겠다.”

열린 우리당 이상수의원이 구속될 당시 남긴 독백이다.

이의원은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의 돈줄을 총괄하는 책임자였다.

당시 노후보가 경선을 통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고도 내우외환 속에서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 속에서 풍전등화 신세였던 후보를 위한 외부지원이 시원할 리 없다.

이의원은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캠프에서 살림을 꾸렸던 사람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후보 캠프에 기여한 공적을 따질라치면 그는 ‘개국 공신’ 정도의 지분을 받아 마땅하다.

지금까지의 정치판 관행대로였다면 그는 지금쯤 ‘공신’ 예우를 받으며 느긋하게 총선을 준비하고 있어야 옳다.

그러나 그는 지금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한 겨울 영어의 몸이 되어 차디찬 감옥에 들어가 있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공로에 따른 달콤함은커녕 어쩌면 정치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신세가 됐다.

이의원 당사자로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힐 상황인가.

이의원이 구속될 당시만 해도 어쩌면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은 이의원에 의해 노대통령 대선자금 전모가 드러나는 폭로전이 전개될지 모른다는 성급한 전망이 나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대선자금 비리의 멍에를 혼자서 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자신의 운명(?)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과거 서울시장 경선과정에서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 국민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어찌 보면 이의원의 이 같은 모습은 철저한 자존 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의원의 모습에서 비겁한 안일 보다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독배’를 택했던 ‘소크라테스’의 결연한 자존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오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민주당사의 전면전 한 가운데 있는 한화갑 전대표의 모습이 이의원의 그것과 양극으로 대비된다.

한 전대표는 지금 이의원과 같은 죄명으로 발부된 영장 집행을 실력으로 저지하며 맞서고 있다.

억울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억울하기로 따지자면 집권당의 수혜는커녕 형평성 논리에 밀려 구속된 이의원과 또 이재정 의원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개인적 과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 그들의 감옥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독배가 당연히 꿀물이나 쥬스와 다르거늘 누구도 그것을 마시고 싶을 리 없다.

그렇다 한들 막가파식 구태정치로 자멸을 재촉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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