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임금님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4-05-26 19: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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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옛날에 사치를 좋아하는 왕에게 세계에서 제일 멋진 옷을 만들어주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사치를 좋아하는 왕의 소문을 듣고 이를 이용해 한 밑천 잡으려는 사기꾼들이었다.

이들은 왕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옷을 만드는 척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이라며 옷을 바치는 양 왕에게 빈손을 내밀었다.

왕은 옷이 보일 리 없었지만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가 두려워 보이는 척 감탄하고 사기꾼들을 치하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단 한 벌 밖에 없다는 자신의 옷을 자랑하기 위해 벌거벗은 상태로 신하들 앞에 나섰다.

신하들 역시 심보가 나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보이지도 않는 옷을 극찬하기 바빴다.

우쭐해진 왕은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저자거리로 나갔다.

그러나 그곳 역시 왕의 옷을 칭찬하는 맞장구만 넘칠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 꼬마가 “어 임금님은 벌거숭이네“라고 외치는 순간, 왕의 흉한 벌거숭이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후 이 이야기의 뒷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모른다.

뒤늦게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로 저자거리를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왕이 너무 부끄러워 자결을 시도했는지, 아니면 천하의 왕을 벌거숭이라고 모독(?)한 꼬마를 불경죄로 처벌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찌됐든 왕이 사기를 당해 자신의 부끄러운 나신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준 해프닝만은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이 될 것이다.

새삼 지나간 어린 시절의 동화를 갑자기 왜 끄집어내는지 의아하게 여길지 모른다.

얼마 전 우연히 한 케이블방송 모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수영팬티 바람으로 출연, 노익장을 과시하던 한 자치단체장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이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듣고 있자니 그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옷을 입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근엄해야할 왕이 여러사람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 데 결정적으로 작용된 요인은 사치를 좋아한 왕 자신의 어리석음과 왕의 잘못을 보완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축인 주변신하들의 기회주의적 아부근성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의 미숙한 분별력이 아랫사람을 무능한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조직의 의욕을 꺾기도 한다.

실제로 이같은 현상은 민선시대에 접어든 각 자치단체에서 종종 목격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앞으로 갈수록 단체장의 권한과 영향력이 비대해질텐데 행여 벌거벗은 몸으로 저자거리를 활보하는 단체장들이 줄을 잇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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