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질곡의 역사만큼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4-08-26 20: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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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한나라당은 어제 국회에서 김덕룡 원내대표 주재로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당초 계획대로 오는 30일 광주 5.18 묘지를 단체참배키로 결정, 이를 둘러싼 당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상배 안택수 이방호 의원 등 몇몇 영남권 수구성향 의원들은 여전히 이에 반발하면서 참배에 불참키로 했다고 한다.

5.18 묘지참배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이 같은 당내논란은 소속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5.18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많은 이들은 5.18 묘지가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됐는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많은 세월이 더 흐른다 해도 5.18 묘역의 역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뇌리에 더 생생히 살아남을 것이다.

5.18 묘역의 배경이 될 수 있는 5.18 민주항쟁은 지난 80년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안착시키기 위해 국민을 희생물로 삼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총칼을 앞세운 정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 광주 시민전체가 일심동체로 저항했던 이른 바 ‘시민군’의 뜨거운 역사를 남긴 사건이다.

또 이를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은 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국민들의 대미인식(對美認識) 변화와 함께 사회운동의 목표로 민족해방·사회주의 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기점이 되기도 했다.

사실 5.18이 공식적으로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시점이 아니다.

5공화국 당시만 해도 5.18 항쟁은 ‘광주폭도들의 난동’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물론 ‘시민군’을 ‘폭도’로 매도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도 꽤 오랫동안 ‘폭도’로서, 죄인으로서 숨죽인 삶을 살아야 했다.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의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정권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5.18 민주항쟁은 비로소 그 정당성을 인정받게 됐다.

이와 함께 5.18 묘지는 광주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따라 국립묘지가 됐고 90년대 들어서는 5.18희생자 묘역을 민주성지로 바꾸자는 움직임에 따라 5만여평의 부지에 5.18 묘지성역화 사업이 3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립묘지 참배를 거부하다니, 차라리 국회의원 뱃지를 반납하는게 순리 아닐까.

어쩌면 5.18 참배를 거부하는 그들은 여전히 5.18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규정하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를 거부할 마땅한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나라당이 수구에서 벗어나는 길은 5.18 질곡의 역사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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