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많은 국가보안법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4-08-29 20:03:12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과 관련, 심기는 물론 체면도 영 말이 아니게 된 헌법재판소에 이어 이번에는 적십자사가 어이없는 짓으로 망신살을 자초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헌재는 최근 국가 보안법 일부 조항 합헌 판결을 내려놓고 시민사회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들 주장에 의하면 헌재는 헌법이 보장해야 할 양심의 자유는 물론 유엔 국제인권조약에서 권고하는 최소한의 규칙조차 외면한 졸속 결정을 내림으로써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충분히 뭇매를 맞을만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인’ 헌재 결정과 상관없이 국회가 국가보안법 폐지 결정을 주도하는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팽배해진 상태다.

그만큼 헌재에 대한 국민 불신이 깊다는 증거다.

더구나 이번 헌재의 결정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는 의혹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여론에 밀려 헌재의 결정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참으로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못한 사건 하나가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적십자사가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직원들에게 서약서를 강요하는 등 입막음을 시도하려 한 것이 그것이다.

적십자사는 최근 내부의 양심고발에 의해 감사원 감사를 받고 오염 혈액을 유통시킨 혐의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방지하고자 적십자사에서 생각해 낸 묘안이 바로 국가보안법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적십자사는 직원들에게 “업무와 관련된 기밀을 외부에 누설하면 반국가적 행위가 됨을 인정하고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 보호법 등에 따라 처벌받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강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세상에, 국가보안법 용도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할말이 많은가보다.

“업무 수행에 있어서 비밀과 관련된 사항을 취급할 때, 비밀인가취급증을 발급받기 위해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돼 있다”며 정당한 절차임을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속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궁색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합법성을 밀어붙이는 그들만의 논리 앞에서 개인의 무기력을 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혈액업무와 국가 기밀과의 상관관계가 이해되지 않아도 그들은 서약서를 제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이 이전에 국가 보안법이라는 미명아래 쓰러져갔듯이 말이다.

이래저래 죄많은 국가보안법이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