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래곤 블레이드', 그리고 중국

오현세 / 기사승인 : 2015-05-10 12: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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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사람들은 틈만 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내고자 기를 쓴다. 개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인간 역사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전쟁의 역사가 바로 그 증거다.

러나 오늘날에는 과거처럼 힘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 아마 공정한 경쟁을 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남보다 확연한 우위에 선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 방법 말고 무슨 신통한 방법, 좀 더 쉬운 방법, 남들의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반발 대신 환호를 받는다면 금상첨화. 그런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것은 영화다. 지금까지 이 방법을 이용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인디펜던트 데이’라는 미국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1996년 작이니까 벌써 2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다. 외계인 우주선의 압도적인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복선, 그리고 장렬한 전투 장면 등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당히 잘 만든 영화다.

흥행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지금 그 내용을 곱씹어보니 주인공은 느끼한 윌 스미스도 아니고 용감무쌍하고 인간미 넘치는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였다. 라이벌인 러시아인부터 사막의 아랍인, 북극의 에스키모인, 아프리카 원주민을 아우르는 전 세계인이 외계인과 싸우는 미국의 분전에 응원을 보내는 장면이 도처에 널렸고 마침내 미국이 외계인의 우주선을 파괴하고 인류를 지켜내자 열국이 미국을 열광적으로 칭송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를 보며 자부심에 벅찬 가슴이 터졌을 미국인들이 가히 상상이 된다.

그 후 미국인 영웅을 내세워 인류를 지키는 내용의 미국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은 더 이상 존 웨인(역마차), 클린트 이스트우드(황야의 무법자), 케빈 코스트너 (늑대와 함께 춤을) 같은 고독한 인간이 아니었다. 자기 이웃, 자기 나라를 구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전 세계, 전 우주를 구함으로서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의 경배를 받아야 만족하는 그런 영웅들이었다. 이런 영화들이 미국이 지구 경찰, 인류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알게 모르게 전 세계에 퍼뜨렸고 그 이미지에 도취된 미국은 지금 드러내놓고 스스로 지구 경찰임을 자임하고 있다.

이런 영화가 통하는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럴만하다고 자타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 아닌 어떤 나라도 전 인종을 아우르고 전 세계를 구한다는 발칙한 설정의 영화는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드래곤 블레이드”를 보기 전까지는.

“드래곤 블레이드”는 홍콩 출신의 리옌쿵(李仁港)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해 얼마 전 개봉한 영화다. 이 영화는 얼핏 지금까지 만들어진 중국영화와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중국의 물가로 볼 때 600여억 원의 제작비는 과연 대단하고 성룡과 함께 존 쿠삭 (존말코비치 되기), 아드리안 브로디(피아니스트)같은 초 일류배우들이 출연하지만 황후화(皇后花 2006) 등을 통해 이미 중국의 막강한 금력을 보아왔기에 배역이나 세트의 웅장함 따위에서 새삼 놀랄 일은 없었다.

오히려 시종 진지하려고 애를 쓰지만 장난기 흐르는 표정을 감출 수 없는 성룡과 성격파 배우인 존 쿠삭, 아드리안 브로디의 부조화, 엉성한 카메라 워크로 막대한 인원과 장비를 투입하고도 평이하게 만들어진 전투씬, 듣도 못한 고대 도시가 실존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설득력 없는 시나리오 등 영화만 놓고 보면 결코 추천하고픈 마음이 없는 영화다. 그럼에도 여기에 언급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 감춰진 중국의 메시지 때문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실크로드를 지키는 장군, 성룡이 쳐들어 온 로마 정예군단을 격파하는 것이 뼈대다. 성룡은 온갖 난관을 뚫고 악한 로마황제 아드리안 브로디로부터 도망쳐 온 존 쿠삭은 물론 실크로드 주변 36개의 부족들을 규합해 승리를 거둔다. 다르게 말하자면 중국과 아시아 부족들이 힘을 합하면 서양의 막강 로마군단도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핵심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 실크로드를 행진하는 성룡을 배경으로 화면 가득 각인되는 4글자의 비문을 통해 오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화적공존(化敵共存). 실크로드의 평화를 위해 적까지도 포함해 모두 중국의 손을 잡으라고 팔을 벌리고 있다. 미소를 짓고 앞장 선 성룡의 뒤를 로마군과 각양각색의 이민족이 따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서양에는 미국이 있지만 아시아에는 중국이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뽐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주요상품과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시당한다.”
“중국의 발전이 강대해지면서, 세상에 가져다주는 것은 더 많은 기회이지, 무슨 위협이 아니다. 우리가 실현하려는 중국의 꿈은 비단 중국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각국의 국민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앞의 인용문은 덩샤오핑의 것이고 뒤의 것은 시진핑이 한 말이다. 중국이 달라진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는 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13년 육상, 해상 실크로드의 복원 구상을 발표했고 2015년 2월, 권력서열 7위의 장가오리 수석부총리를 그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세계평화발전을 위해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천명했다.

중국은 지금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 거대한 나라, 이 거대한 민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제 중국도 세계를 이끌 수 있다. 서양에 미국이 있다면 동양에는 중국이 있다.” 라고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밥그릇 싸움하느라 정신없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여 제발 고개를 들고 세상을 좀 보라. 영화라도 좀 보라. 하긴 봐도 뭐가 뭔지 알려나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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