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夫를 기억하라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4-09-23 20: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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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벌써부터 곳곳에서 교통체증을 부르는 성묘인파가 눈길을 끌며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실감나게 한다.

잘 여문 곡식으로 술과 떡을 빚고, 햇과일을 따 조상께 차례를 지내는 한가위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풍성한 가을을 준비한 손길이 따로 있다.

바로 농부들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곡식과 과일을 제공한, 즉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볕을 그대로 인내하면서 땀 흘린 농부들의 노고를 제일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농촌은 뒤숭숭하다.

정부의 쌀 수입개방 조치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22일부터 정부의 쌀 수입 개방에 항의하는 뜻으로 전국 곳곳에서 `나락 갈아엎기 투쟁’을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수확을 불과 보름가량 남겨둬 황금물결로 출렁이던 일부지역의 들녘은 트랙터가 몇바퀴 돌고 나자 물 많은 논바닥에 쓰러진 벼가 뒤엉키면서 이내 볼품없는 진흙탕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 들린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경작했던 나락을 자기 손으로 무참히 짓이겨야 하는 농부들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쌀은 우리 농업의 최후의 보루이고 결코 버릴 수 없는 자존심인데도 경제논리에 치여 곳간을 송두리째 내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그들은 절규한다.

이유있는 항변이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은 알겠는데 선뜻 답이 안나오니 답답하다.

문득 어릴 적 읽었던 ‘원숭이 꽃신’이라는 동화책 내용이 떠오른다.

애초 꽃신 없이 맨발로 다녔던 원숭이는 간교한 오소리 계략에 의해 신발없이 살 수 없는 신세가 된다. 급기야 원숭이는 오소리에게 신발을 얻기 위해 자신의 겨울 식량을 다 갖다 바치고도 모자라 오소리의 가정부가 되는 수모를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된다. 동화 속 원숭이의 모습이 어쩌면 농토를 잃어버린 우리 미래의 모습은 아닐지.

쌀 개방 문제는 농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가 쌀개방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는지 이번 추석명절을 계기로 한번쯤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추석은 설과 함께 일년에 두 번 밖에 없는 큰 명절이니 올해도 몇 천 만 명이 귀향길에 오를 것이다.

정성들여 장만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을 찾아뵈며 가족과 이웃간의 정을 재확인하는 기회도 갖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이번 귀향길을 통해 우리 모두가 농촌의 아픈 현실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쌀 개방 문제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농촌의 곤궁한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그들은 힘을 얻고 다시 살아볼 용기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마음만은 넉넉한 한가위를 위해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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