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에게 감사한다

오현세 / 기사승인 : 2015-10-14 18: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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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한때 독일에 대한 믿음은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독일 철학자들의 머리에서 근대사를 관통하는 지성이 비롯되었고 진료기록은 라틴어나 독일어로 쓰지 않으면 권위를 세울 수 없었고 독일제 기계는 완벽을 의미했다. 독일은 세계대전을 수차례 일으킬 만큼 강력한 나라, 폐허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근면의 나라,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성숙한 나라로 깊이 인식된 나라였다. 일본이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도 독일만큼 성숙하게 되면 달라지겠지 하는 위안을 주던 나라였다. 난민들도 앞장서 받아들이고 절도 있는 경제 정책으로 온 유럽이 흔들리는 마당에도 홀로 꿋꿋한 나라였다. 독일은 현대 사회의 본이었다. 인간간의 신뢰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 한 가닥 희망이었다. 그것이 무너졌다. 폭스바겐에 의해.

폭스바겐 사건은 단순히 한 회사의 사기극이 아니다.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회사들은 얼마든 지 있다. 평범한 회사였다면 혀나 한번 차고 말 일이다. 폭스바겐은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 아니다. 인간 상호간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 어지러운 세상도 독일기업같은 회사들이 있는 한 언젠가는 바로 잡히겠지 하는 희망을 짓밟아버렸다. 연비, 환경오염은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그보다 더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해결해 왔다. 그러나 이번 폭스바겐 사건이 무너뜨린 인간 사회의 상호 신뢰는 도대체 언제 회복 될런 지 눈앞이 캄캄하다. 그럼에도 폭스바겐의 행위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사기와 배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건의 본질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 암담하다. 폭스바겐은 연비 조작을 사과할 일이 아니다. 사회의 틀을 유지시키는 신뢰라는 접착제에 불량품을 사용한 것을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런 판국에 폭스바겐의 사장이 나서서 이번 사건은 일부 엔지니어의 행위라고 발뺌하는 기사가 보인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었다고. 일부 프로그래머들의 짓이었다고. 혹시나, 그래도 다시 한 번 믿어봐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직은 하는 일말의 희망마저 앗아가 버린 발언이었다.

이이(李離)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晋)나라의 요즘으로 말하면 사법부장관 자리에 있던 사람이다. 한번은 부하가 대충 취조한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재가해 피의자를 처형해 버렸다. 나중에 피의자의 죄 없음을 알고 이이는 스스로 고랑을 차고 죽여 줄 것을 임금에게 청했다.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책임은 직분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직접 취조를 하면서 소홀히 한 부하가 전적으로 책임을 질 일이다. 그의 보고를 받아 일을 처리한 귀공의 잘못이라니 터무니없다.” 이에 이이가 말했다. “저는 장으로 있으면서 그 권한을 부하에게 위임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보다 훨씬 많은 봉록을 받으면서 나눠준 적도 없습니다. 바로 책임자이기에 당연한 권한과 부를 누렸습니다. 그 대가는 책임입니다. 우리 사법부의 잘못으로 양민이 죽었음으로 그 책임은 제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재차 만류했다.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 그대를 임용한 내 잘못이 아닌가?” 이이가 답했다. “아닙니다. 제왕께서는 자리마다 일을 올바로 처리하리라 믿고 사람을 쓰신 것입니다. 때문에 제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제왕의 자리조차 영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이이는 스스로 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폭스바겐 사장의 변명을 접하면서 이이를 떠올린 것은 이이를 모욕하는 것이겠지만 그만큼 독일기업에, 그 중에서도 명가 중의 명가 폭스바겐에 대한 신뢰가 컸음에서였다. 독일도 한낱 평범한 나라일 뿐임을, 독일 기업도 일반 장사치에 다름없구나하는 깨우침을 주어 고맙다. 폭스바겐이 아니었으면 자칫 계속 환상을 갖고 살 뻔 했다. 깨우침이 이처럼 비통하기도 참 드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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