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선거법’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04-10-28 19:33:28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잔치를 벌일 때는 아무 관계가 없더라도 동네 노인들을 꼭 모셔다 상석에 앉혀 대접을 해야 한다.

돼지를 잡으면 살코기는 잡은 사람이 갖지만, 내장 고기는 환갑이 지난 노인들에게 갖다드린다.

100세 이상 된 노인은 임금님이 옷과 먹을 것을 해마다 내리고, 80세 이상 된 노인은 관찰사가 옷과 먹을 것을 주며, 70세 이상 된 노인은 비록 천민일지라도 천민 신분을 면하게 해준다.

마을 노인이 돋보기나 신발 같은 노인용품을 살 때 그 값의 반액을 곗돈으로 보태준다.

이것이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인 노인공경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노인공경 사상이 ‘선거법’이라는 요지경 법에 의해 풍비박산 나게 생겼다.

지난 추석 명절 서울 각 자치구가 경로당에 떡 상자 등을 전달한 사실과 관련, 최근 선관위와 서울지방검찰청이 서울 25개 전 구를 대상으로 선거법위반여부를 조사 중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구청에서 경로당에 돌린 내용도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한 경로당에 많아야 10만원 이내에 불과한 떡 상자나 과일 상자 정도다.

그리고 이런 사업은 특별히 올해만 한 것이 아니라 매년 명절을 기해 ‘노인공경’ 차원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구 행정의 일환이다.

그런데 관행으로 행해졌던 미풍양속이 졸지에 ‘범죄행위’로 전락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유인즉 개정된 선거법에서 이를 기부행위로 보고 ‘상시제한’에 위반된 위법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 날 경로당 위문까지 구청장의 선심성 행정으로 확대해석하고 검찰까지 나선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걱정이 늘고 있는 판이다.

노인 공경은 선대의 노고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예우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모자라지 않는 사회적 규범으로 권장돼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에서 추석을 맞아 동네 경로당에 떡과 과일을 돌린 행위가 ‘범죄’로 취급된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위정자들은 “지들은 차떼기로 수십억을 해먹어도 유야무야 하면서 명절 때 노인들이 떡 한조각 받는 꼴은 못보느냐”며 “선관위에서 경로당 노인들을 붙잡고 조사를 벌이는 모습을 보니 서글픈 생각까지 들더라”는 노인들의 절규를 깊이 되새겨보길 바란다.

올바른 선거 풍토도 좋지만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