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자칼럼
밑음과 배음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사람들은 음악회를 찾아 연주를 들으며 감동하고 즐거워한다. 왜 그런가? 작품이 좋아서? 연주자의 솜씨가 뛰어나서? 다 맞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소리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무슨 당연한 소리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항상 접하면서도 대충 지나치는 것이 한 둘 이겠냐만 음(音)도 그 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다. 어떤 소리가 나면 사람들은 그 소리를 다 들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소리가 나면 그 뒤에 섞인 소리는 거의 안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음악적인 소리는 하나의 음정을 가지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피아노나 기타를 가지고 어떤 소리를 내보자. 라(A)를 쳤다고 가정해보자. 모두 ‘라’라는 음정의 소리를 듣는다. 그 외에 다른 소리를 들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라’는 여러 음이 섞인 복합음이다. 그 ‘라’ 속에는 우선 여러 옥타브의 ‘라’가 들어있고(이 경우는 같은 음이니 제외하고라도) ‘미’와 ‘도샾’이 들어있다. 그 외에도 여러 음이 있지만 이 둘이 대표적이다. 이 ‘미’와 ‘도샾’이 무시해도 좋을만큼 작은 크기로 들어있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사운드 편집이 가능한 소프웨어를 사용해 그래프로 나타내 보면 거의 ‘라’에 필적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라’만 인식하는 이유는 ‘라’가 조금이지만 제일 크기 때문이다. 몸집이 큰 사람 뒤에 그보다 조금이라도 작은 사람이 겹쳐 서면 정면에서는 앞의 큰 사람만 보일 뿐 그 뒤에는 수 백 명이 서있어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장 크게 들려 우리가 그 이름을 붙인 음을 우리는 ‘밑음’ 또는 기음(基音 Fundamental Frequency)이라고 부르고 그 뒤에 숨은 수많은 음들을 상음(上音.overtone)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상음 중, 밑음의 진동수에 정배수에 해당하면서 유별나게 크게 소리 나는 음들이 있는데 이들을 배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배음하면 얼핏 배경음이라는 뜻의 배음(背音)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배음(倍音)이고 영어로는 하모닉스(Harmonics)라고 부른다. 배(倍)라면 한 배, 두 배..즉 앞의 수나 양이 곱이 되는 것을 말한다. 왜 그렇게 부를까? 배음은 아무 규칙없이 마음대로 뒤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밑음이 가지는 진동수의 배수(倍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음정, 즉 음의 높이는 초당 진동수로 결정된다. 기타 줄의 5번 선이 ‘라’인데 진동수는 110헤르츠다. 즉 튕기면 줄이 초당 110번 진동한다. 그런데 이 소리를 밑음으로 그 뒤에 배수의 진동수를 가진 220, 330, 440, 550...헤르츠 음들이 히말라야 고봉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음은 두 배의 진동수를 가지면 한 옥타브 높은 같은 음이 된다. 즉 기타 줄의 5번 선 ‘라’는 110헤르츠고 3번 선의 두 번째 칸 ‘라’는 220헤르츠, 1번 선의 5번째 칸의 소리는 진동수 440헤르츠의 ‘라’다. 이 440헤르츠 ‘라’가 국제표준음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악기는 이 소리를 기준으로 음을 맞춘다. 그런데 같은 ‘라’음인 헤르츠 220과 440사이에 있는 330헤르츠 음은 뭘까? ‘미’다. 440과 880사이에는 550, 660, 770음들은 뭘까? ‘도샾(550)’, ‘미(660)’, ‘솔(770) 이다. 음악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시는 분들은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지 알 것이다.
‘라’를 밑음으로 만들어진 화음, 우리가 통상 부르는 ‘A’코드는 ‘라’,‘도샾’,‘미’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7화음을 만들 때는 ‘솔’을 추가한다. 그런데 보라. ‘라’라는 밑음 하나를 튕겼는데 이 모든 음이 같이 들어있지 않은가. 즉 ‘라’는 단일한 음정이 아니라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여러 소리들이 합해 그 대표로서 나는 소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배음(倍音)을 영어로 하모닉스(Harmonics)라고 하는 이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배음은 잡음이다. 나는 순수한 ‘라’소리만 듣고 싶다. 순수한 소리가 진짜 아름다운 소리일 것이다 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나이든 세대는 그런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으며 살았다. 라디오에서 뚜 뚜뚜 뚜-하고 정시를 알릴 때 나던 시보 소리의 마지막 긴 음이 바로 순수한 440헤르츠 ‘라’ 기계음이다. 그 음이 좋았나? 음악적으로 듣기 좋은 소리인가?
 
또 배음들이 밑음과 똑같은 크기를 가지고 경쟁하면 더 멋진 소리가 날까? 모든 소리를 같은 크기로 섞으면 어떤 소리가 날까? 색처럼 검은색? 빛처럼 흰색? 그처럼 환상적인 어떤 소리? 아니다. 예전, 티비는 방송을 마치면 소리를 냈다. 지글지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그런 소리를 냈다. 빨리 끄고 주무세요 하는 소리다. 그것이 모든 음들이 자기를 죽이지 않았을 때 나는 소리다. 모든 음정을 같은 크기로 섞어 만든 기계음이다.
 
아름다운 소리는 순수한 소리가 아니라 밑음과 배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겠다. 밑음은 자기가 거느린 수많은 소리들을 대표해 정면에 당당히 서있고 배음들은 결코 크기에서 아주 조금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묵묵히 밑음 뒤에 도열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화음을 이루어 음을 살찌우고 있다. 이것이 아름다움이다. 어떻게 해야 소리가 아름다움이 되는 지 음악을 알면 보인다.
 
사람들은 음악은 들으면서 소리는 안 듣나 보다. 작금의 현실에는 밑음도, 배음도 없다. 모두 자기가 밑음이라고 아우성들이다. 그러니 들리는 소리라고는 소음 뿐이다. 이 소음은 옛날 티비처럼 끄고 안 들을 재간도 없다. 제발 밑음과 배음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소리 좀 듣고 살았으면 좋겠다. 

오현세   siminilbo@siminilbo.co.kr

<저작권자 © 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HOT 연예
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