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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이야기] 한국 캘리그라피의 현주소
  • 시민일보
  • 승인 2017.12.06 15:50
  • 입력 2017.12.0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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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그라퍼 김진한
떨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캘리그라피‘라는 분야 자체에 대해서 왈가왈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잘못된 정보’로 캘리그라피를 접하고 익히려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말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캘리그라피에 대한 인식은 그저 ‘예쁘게 쓴 손글씨’다. 아니, 좀 더 뭉뚱그려 말하자면 ‘예쁘게 쓴 한글 손글씨’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좀 잘못된 인식인데, 우선 캘리그라피의 어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캘리그라피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kallos(아름다운)과 grafi(쓰는)이 합쳐지는데서 유래됐다. 캘리그라피가 한국으로 유입되면 서 서구권에서 쓰이던 의미, 즉 아름다운 문자 예술, 글자를 직접 쓰는 예술이란 의미를 가져오다보니 그에 부합하는 한국의 문자 예술 계통은 ‘서예’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서구권의 전통적인 캘리그라피나 다른 캘리그라피 분야보다 한국인들은 당연히도 서예를 접할 기회가 더 많았고, 이로 인해서 서예는 캘리그라피의 하위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서예가 먼저 있었고, 후에 캘리그라피라는 분야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점차 많아져 갔다. 이 생각이 좀 더 진화해 ‘예쁘게 쓴 한글 손글씨(한글 붓글씨)가 캘리그라피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고착화 돼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의 고착화에 더 힘을 실어준 것이 바로 ‘필기구의 발달’이다. 필기구가 다양해짐과 함께 붓글씨 뿐만 아니라 펜글씨 또한 좀 더 폭넓게 사람들에게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서 일반인들과 작가들 모두 ‘손글씨’에 이목을 집중하게 됐다. 특히 캘리그라피로 용인되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 경주대 브로셔 한국어
 이 과정에서 캘리그라피를 쓰는 도구의 주류가 붓에서 펜으로 이동하면서 배우는 과정과 시간이 절약되는 경우가 증가했고, 이로 인해 인스턴트 푸드마냥 한국에서의 캘리그라피의 의미도 한없이 축약 됐다. 단순히 접하는 것으로 이해하려다보니 생긴 캘리그라피에 대한 이해가 바로 ‘예쁜 한글 손글씨’가 돼버린 것이다.

앞에서 본 과정처럼 캘리그라피, 정확하겐 서예(붓글씨)와 펜을 통한 한글 캘리그라피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게 됨으로써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만 이런 유행이 가져온 문제점은 가르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준비된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간혹 주변에서 값을 지불하고 배웠으나 내 글씨를 배운 것 같지 않다고 하는 분들을 만난다. 어떤 수업을 들었었는지 수업내용을 들어보면 열에 아홉은 나오는 내용이 ‘감성을 담은 글씨를 쓰세요!’더라.
       
   
▲ (김진한 作 )
  물론 그 내용이 완벽하게 틀렸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캘리그라피에 대한 어원과 유래 정도는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말해주어야 하고, 그리고 개인마다 서체의 특징도 다르고, 하고자 하는 캘리그라피의 분야 또한 달라서 글씨의 발전과정·방향을 잡아주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들을 모두 인지하지 못한 채 바로 강사로서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인 자격증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런 경우의 강사와 강의들이 과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해라(김진한 作)
  캘리그라피가 일반적인 손글씨와 다른 점은 바로 글씨에 본인 의도가 담겨야 하고, 다르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남의 글씨와는 달라야 함’이다. 캘리그라피는 ‘손글씨’이면서 동시에 ‘디자인적’인 면이 중요시 여겨지는 예술 분야이기 때문에 영화나 만화와 같이 저작권의 개념이 어느정도 통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본 내용처럼 캘리그라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폭넓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나온 강의는 대체로 ‘본인이 해왔고 써왔던 글씨’들에 국한돼 있고, 그것을 가르치는 과정은 역시 자신의 글씨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운다 하더라도 강사의 글씨를 모방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면 남과 다른 글씨를 써야하는 캘리그라피에서 본인 스타일이 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 닭(김진한 作)
  캘리그라피는 글씨를 쓰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나 의도로부터 시작 한다. 그러나 개인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글씨는 더 이상 캘리그라피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펜글씨든 서예든 서구권 캘리그라피 분야이든 간에 대중적으로 알려져 쉽게 생각하고 있는 캘리그라피에 대한 인식에 대한 전환과 함께 그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각각의 분야마다 올바른 학습법으로 배울 기회를 좀 더 많이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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