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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위대한 국군의 명예를 해치고 있다!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한국의 대기업 중심 발전 전략이 중소기업 중심의 대만을 누르고 新興(신흥) 경제권에서 단연 1등의 업적을 남기고 있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론 대기업이 성장하기 힘든 체질이었다.

일본계 미국 역사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조지 메이슨 대학교수)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의 세계사 흐름을 해석한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란 名著(명저)를 써 유명해졌다. 그는 이어서 1995년에 '신뢰'(Trust)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가족, 사회, 기업 등 공동체의 신뢰범위가 클수록 그런 사회는 큰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한국, 대만, 홍콩, 중국의 문화는 가족주의이기 때문에 신뢰가 미치는 범위가 血緣(혈연)집단에 머물러 있어 대기업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경제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썼다. 반면 독일 일본 미국 영국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로 사회의 성격은 다르지만 가족을 뛰어넘어 사회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공동체 윤리'가 정착되어 있다. 따라서 신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많은 대기업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신뢰가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자본'은 '자발적 사회성'(Spontaneous Sociability)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큰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윤리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는 '조직은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기초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事前에 합의된 도덕률이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상호신뢰의 기초를 마련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계약과 구성원의 관계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일할 때는 형식화된 규범이나 규제 속에서만 협력하게 된다. 이런 때는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협력을 이끌어내고 때로는 소송을 통해서 갈등을 풀어야 하니 생산성은 줄고 경비가 많이 든다.

가족주의 사회는 신뢰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이탈리아는 가족회사나 중소기업 정도의 소규모 기업활동에 알맞다. 반면 독일 일본 미국 영국처럼 가족주의가 약한 대신 공동체 윤리가 확립된 곳에선 신뢰의 범위가 넓어 대기업을 만들어낸다.

후쿠야마는 여기에 한국이 예외적 존재라고 했다. 그는 이 책의 한 章(장)을 할애하여 한국이 왜 가족주의 사회이면서도 세계적 대기업을 만들어내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가족주의는 일본보다 강하고 중국과 비슷하지만 중국보다도 신뢰의 범위가 좁다고 해석했다. 한국의 가족은 중국처럼 대가족이 아니고 중국의 유교는 충성을 강조했던 데 비해 한국의 유교는 효도를 강조한 점에서도 그렇다.

한국은 홍콩 대만처럼 가족회사나 중소기업이 체질적으로 맞는데 왜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만들어냈는가. 그는 그 이유를 朴正熙 대통령의 성공적인 기업지도정책에서 찾았다. 朴대통령은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조건에서 기업육성에 정부가 개입하도록 하여 기업인들이 수출산업을 일으켜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도록 했다. 그는 또 1970년대에 들어서는 국가자원을 중화학공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기업을 이 쪽으로 몰아세워 1만t짜리 배도 만든 적이 없는 나라에서 26만t짜리 배를 만들어낼 정도의 거대한 공장들을 세우도록 했다.

朴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이고 효율적이며 私心(사심)이 없는 정부주도 정책이 후천적으로 공동체의 큰 신뢰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가족주의적인 경제문화를 뛰어넘어서 대기업이 탄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朴대통령의 정책 이외에 군대와 기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꼽았다. 군대는 젊은이들에게 사회화의 기회를 제공하고 여기서 얻은 복무기강이 경제생활로 옮겨갔기 때문에 좁은 가족주의의 신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의 기독교, 특히 신교도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기업가정신으로써 경제생활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후쿠야마가 유교적이고 가족주의적이며 영세한 한국 경제문화의 대전환을 가져온 원인으로서 지적한 세 키워드는 박정희, 군대, 신교도이다. 朴대통령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큰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 아니라 경제를 국가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군대=애국심'으로 이어지는 사고방식은 그 뒤 약해진다. '당파성-계급적 적대감-국가분열적 선동'이 1987년 민주화 시기의 한 특징이 된 것은,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딛고 있는 정신적 기반이 공동체의 윤리나 국가주의가 아니라 前근대적인 가족혈연주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守舊的(수구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신뢰를 쌓고 이를 넓혀가는 것이 근대화인데 계급투쟁론에 사로잡혀 한국사회를 군인과 文民, 左와 右,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로 분열시킴으로써 신뢰의 규모를 축소시킨 셈이다. 국민통합의 실천자여야 할 정치인들이 국민과 國論 분열의 선동가로 뛰고 있는 이런 경향이 장기화되면 한국의 대기업도 위기에 봉착하여 다시 영세한 소기업 경제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후쿠야아의 예언적 분석이다.

한국 新敎(프로테스탄트)의 主流는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장로교이고 이 장로교는 칼빈주의의 神學을 믿는다. 칼빈주의는 자본주의의 윤리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근면과 성실을 강조한다. 칼빈주의가 新敎의 주류가 된 나라는 대체로 一流국가가 되었다.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그런 예이다. 일본 점령기 때 천황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에 한국 기독교의 대부분이 굴복했지만 칼빈주의로 무장한 소수의 장로교 목사들이 이를 거부하여 순교하고 투옥되면서 신앙의 자유를 지켜갔다. 이들이 광복 뒤 예수교장로회 高神派(고신파)와 합동파를 만들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朴대통령에게 가장 비판적이었던 기독교 장로회 계통은 日帝 때 신사참배를 했고 朴대통령의 근대화 정책을 지지하는 편이었던 高神派와 합동파는 신사 참배를 거부했던 사람들을 神學의 주축으로 삼았다. 칼빈주의는 종교탄압을 하지 않는 정권과 법률에 대해서는 순응하지만 종교를 탄압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神學을 갖고 있다. 칼빈주의는 자본주의의 윤리뿐 아니라 法治 민주주의와도 친화적인 神學이다.

국군의 역사적 역할은 이렇게 정리된다.

<국군은 건국 과정에서 좌익들의 도전을 누르고 스탈린이 金日成 (김일성)을 조종하여 일으킨 6·25 남침전쟁에서 조국을 방위함으로써 대한민국뿐 아니라 자유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냈다. 군은 또 조국 근대화의 권력기반이 되어 정치를 안정시킴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장교단은 미국식 先進(선진) 조직경영 기법을 가장 먼저 배워와 근대화 시기에 행정조직과 기업경영에 가르쳐주었다. 국군은 또 越南(월남)파병을 통해서 해외로 뻗어나가는 韓民族의 선도자가 되었다. 1980년대의 민주화 격변기에는 金日成 집단의 도전과 공작으로부터 한국 사회를 보호하여 소란한 민주화의 과정을 관리하는 한편 정권변동기에는 자제하고 인내하여 文民(문민) 優位의 새로운 정치질서에 적응하였다. 국군은 남북통일기에는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북한에 우리의 영향력을 투입하는 기본 역량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군은 대한민국 主導(주도)의 자유통일을 뒷받침하는 통일武力(무력)이 될 것이다. 통일 뒤에도 국군은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를 보장하는 안전판으로 남아 조국이 자주 독립 번영의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國權(국권)의 수호자 역할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 기독교(이승만), 군대, 대기업은 富國强兵의 4大 공로자이다. 富國强兵에 성공한 나라는 거의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와 복지를 이룬다. 박정희, 기독교(이승만), 군대, 기업이야 말로 진짜 진보 이었다. 국군을 분열시키는 문재인 대통령과 송영무 국방장관은 위대한 국군의 명예를 해치고 있다. 군대는 총탄뿐 아니라 명예와 사기가 있어야 싸운다. 

출처 : 조갑제닷컴

조갑제  siminilbo@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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