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지켜낸 명판결, 미래의 대법원장감이다!

조갑제 / 기사승인 : 2018-08-26 14: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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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당해 표현이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것인 경우, 그 공적인 존재가 가진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 정확한 논증이나 공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봉쇄되어서는 안되고 찬반토론을 통한 경쟁과정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인데, 사람이나 단체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흔히 위장하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성질상 그들이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증명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에 대한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가 진실에 부합하는지 혹은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따짐에 있어서는 일반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엄격하게 입증해 낼 것을 요구해서는 안되고, 그러한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구체적 정황의 제시로 입증의 부담을 완화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 정황을 입증하는 방법으로는 그들이 해 나온 정치적 주장과 활동 등을 입증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정치적 이념을 미루어 판단하도록 할 수 있고, 그들이 해 나온 정치적 주장과 활동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공인된 언론의 보도내용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여기에 공지의 사실이나 법원에 현저한 사실도 활용할 수 있으나, 아무리 공적인 존재의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문제의 제기가 널리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정황의 뒷받침도 없이 악의적으로 모함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은 물론 구체적 정황에 근거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어휘를 선택하여야 하고, 아무리 비판을 받아야 할 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멸적인 표현으로 모욕을 가하는 일은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37531 판결 [손해배상(기)]
한국논단 관련 명예훼손 사건 판례, 주심 이용우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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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하는 등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영주(69)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의 이유가 흥미롭다.

고 전 이사장은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나는 1982년 부산지검 공안부 검사로 있을 때 부림사건을 수사했다"며 "부림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아닌 공산주의 운동이었고, 그 사건 변호사였던 문재인 후보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부림 사건은 1981년 9월 부산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법원에서 최고 징역 7년형까지 선고받았고 이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 후 재심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수사과정에서 적벌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던 점이 무죄 선고의 주된 이유였다. 문재인 변호사는 부림 사건 재심 변호인이었고, 고 이사장은 부림사건 수사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 수사검사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는 "고 전 이사장은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평가한 여러 이유를 제시하고 있고, 그에 기초해 (문 대통령에 대해) 본인(만의) 진단을 내린 것"이라며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으로 모멸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그는 또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허위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김 판사는 "자유민주주의에 수많은 개념이 포섭되듯이 우리 사회에 일의(一義)적인 공산주의 개념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라며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와 이후 세대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개념이 다르듯이 고 전 이사장이 표현한 공산주의의 개념도 다르고, 따라서 공산주의자란 표현이 허위사실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김 판사는 또 "한정된 자료로 판단하는 형사 법정에서 개별 정치인의 정치이념과 사상을 결정짓는 것은 그 능력과 권한을 넘어선다고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을 법적으로 가리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이다.

김 판사는 문 대통령이 당시 대선후보로서 ‘公人’이었던 만큼 고 전 이사장의 표현의 자유가 폭 넓게 보장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판사는 "공적인 존재에 대한 어떤 표현이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고, 이 공적인 존재가 클수록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며 "의혹이 있다면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치인의 정치적 입장과 철학은 공론의 장에서 가장 잘 평가받을 수 있고, 이는 대통령을 투표로 선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념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됨으로 그 정체성에 대한 토론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공론의 장에서 자연스럽게 결론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용우 대법관이 주심이 된 한국 논단 관련 사건에서 확립된 판례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념논쟁은 민주적 방식으로 정정당당하게 논리적으로 해야지 형법의 힘을 빌어 해선 안 된다는 충고이기도 하다. 민주적 방식이란 상호 비판의 자유를 의미한다.

우파가 종북, 친북, 주사파,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하면 논리적 대응을 하지 않고 고소부터 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나의 이념은 이것이다”고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공정한 토론이 될 리가 없다. 주사파는 가장 反민주적 인사들인데 이들에게 주사파라고 하면 “나는 민주투사이다”라면서 고소부터 하고 달려드니 정상적 토론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판결은 단독판사가 대법관처럼 성숙된 판단을 한 셈이다. 미래의 대법원장이란 생각이 든다.

언론의 자유와 사법부의 독립이 살아 있으면 자유민주체제는 정권의 독재화를 견제할 수 있는데 김 판사처럼 개인의 양심과 용기가 중요하다.

守一隅照千里, 즉 각자가 맡은 모퉁이를 잘 지키면 이런 힘이 합해져 세상을 밝게 비치게 되는 법이다. 전문 지식인들의 용기, 그 모범을 보여준 명판결이었다.

출처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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