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박근혜 탄핵이 초래한 모순
   
▲ 임종건 전 서울경제신문 사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대한민국 정부에 모순된 과제를 안겼다. 그 모순은 이 사건과 관련한 여러 갈래의 재판에서 계속 드러나고 있지만, 가장 구체성을 띠고 있는 것은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투자자·국가소송(ISD)’ 제기 움직임이다.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주된 죄명은 국정농단이지만 그것의 핵심은 직권남용과, 강요를 통해서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이고, 그중에서도 삼성으로부터 받은 금품은 경영권승계 청탁과의 관련 여부로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검찰은 삼성이 경영권 승계의 일환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찬성해주도록 지원을 청탁했고, 박 대통령은 연금공단에 부당하게 압력을 가했으며, 그 매개물이 뇌물이라고 봤다.

이 부분에 대한 재판은 현재 각급 법원에서 엇갈린 판결이 속출하며 진행 중이다. 가장 최근의 재판은 지난 24일 선고가 이뤄진 박근혜 2심 재판이다.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형량이 감경되는 통례와는 달리, 이 재판에선 이례적으로 1심 재판보다 징역과 벌금 형량을 높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심에서 배척했던 삼성합병 건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혐의를 인정한 점이다. 1심이 "뇌물죄는 증거에 의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인정돼야 한다"고 한 반면, 2심은 "대가 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면 충분하고, 청탁대상인 승계작업은 구체적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박근혜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이 사건 기소장에 동원한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 개념을 그대로 인용한 꼴이다. ‘포괄’"묵시’등의 용어는 범죄의 내용을 이중적으로 모호하게 한 표현이다. 이런 모호성을 좀 더 명료하게 하는 것이 상급심의 존재이유다.

특히 체형이 수반되는 형사재판에서 증거재판주의 원칙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박근혜 2심은 합병 성사 후인 2015년 7월 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단독면담과 관련한 몇가지 정황을 들어 "경영승계 얘기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아예 심증에 의한 판결임을 말해주고 있다. 

박근혜 재판과 동시에 진행되면서 교호작용을 하는 재판이 이재용 재판이다. 작년 8월에 선고가 이뤄진 이 재판의 1심은 박근혜 2심처럼 ‘포괄적 현안’과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으나 올 2월의 2심에선 이를 부인했다. 뇌물관련 혐의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된 내용으로 존재해야 하고, 포괄적이라고 애매하게 정의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삼성합병과 관련해서는 민사재판도 있는데 여기서도 엇갈리기는 매한가지다. 2015년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매수가를 올려달라며 낸 가격조정청구신청을 1심에선 기각했으나 2심에선 인정했다. 그러나 일성신약이 연금공단의 의결권행사에 하자가 있다며 제기한 합병무효소송에서 1심 법원은 작년 8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삼성합병 관련 재판에서 유일하게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는 재판은 연금공단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다. 합병찬성 압력을 가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와,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의 업무상배임죄는 1, 2심 모두 유죄가 인정됐다.

박근혜 재판, 이재용 재판, 연금공단 관계자 재판, 이 모두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1, 2심에서 엇갈리는 판결을 교통정리 한다는 의미 외에 엘리엇 대응 차원에서도 중요해졌다.

엘리엇은 지난 14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위법하게 개입해 최소 7억7,000만달러(한화 8,720억원)에 달하는 손해가 발생했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의 중재통보 및 청구서면을 지난 12일 한국 정부에 보냈고, 정부는 법무부 주도로 변호인단을 구성해 대응하고 있다.

이들 사건에서 검찰의 기소내용은 하나하나가 엘리엇 측에게는 딱 떨어지는 소송요건이다. 연금공단 관련자들에 대한 1, 2심의 유죄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점에서 엘리엇에겐 결정적으로 유리한 재료이다. 여기에 다른 상급법원에서까지 정부의 부당개입혐의가 인정되고 있으니 엘리엇으로선 내심 쾌재를 부를 성싶다.

이제까지 엘리엇에 불리한 국내 판결은 이재용 2심 판결뿐이다. 그래서 정부 대응팀은 그 판결 내용을 삼성합병에 문제가 없다는 증거로 엘리엇 측에 제시했으나 박근혜 2심 재판부가이를 뒤집어 정부 입장만 곤혹스럽게 됐다. 

검찰의 입장에선 대통령 탄핵이 지상 목표였으므로 다소 애매모호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리하게 기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은 보다 중립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판단해법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사회통합에도 기여해야 한다. 지금처럼 각급 법원마다 상반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국민을 혼란하게 하고,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검찰이 벌여놓은 일을 법무부가 쓸어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엘리엇의 ISD는 한국정부에는 모순적 딜레마이다. 그것이 외국의 헤지펀드들로 하여금 정부를 상대로 한 ISD의 빌미가 돼 혈세를 축내게 하는 원인이 된다면 국민에겐 '왕짜증'이고 국가에겐 '개망신'이다.

7월 말 연금공단이 투자기업의 대주주로서 오너들의 잘못된 경영관행을 견제할 목적으로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제도가 그런 빌미의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정부가 대기업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연금공단을 통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장악이 목표가 되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부개입이라도 반드시 문제가 된다. 그로 인해 한국정부는 엘리엇과 같은 외국의 투기자본들의 ISD에 상시적인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 제도의 운용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임종건  siminilbo@siminilbo.co.kr

<저작권자 © 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종건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HOT 연예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