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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1월 23일, 그 날
  • 시민일보
  • 승인 2018.11.26 15:58
  • 입력 2018.11.2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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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보훈청 보훈과 염민주

 
   
 11월 3일은 ‘학생의 날’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돼 이듬해 3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광주학생운동일인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했다. 특히 올해로 제89주년을 맞는 학생독립운동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행사로 격상되어 거행되었다. 당초 교육부 주관으로 지방교육청에서 실시한 행사였지만,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앞으로 정부기념식은 국가보훈처에서, 관련 계기행사는 교육부가 각각 주관해 진행하기로 했다.
 
이처럼 부산에서도 학생들이 일제의 차별에 항거한 사건이 있다. 바로 ‘부산항일학생의거’다.
 
일명 ‘노다이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항일학생의거’는 1940년 11월 23일,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학생 동원 군사훈련으로 진행된 경남학도전력증강경기대회(慶南學徒戰力增强競技大會)에서 부산 병참기지사령관으로 대회 심판장이었던 일본군인 노다이가 벌인 편파적이고 민족 차별적인 대회 운영에 맞선 부산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이다.
 
의거는 노다이의 편파판정으로 분노한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와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발생하였다. 그들은 구덕운동장에서부터 보수동으로 내려오며 “황성 옛터”와 우리 민요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노다이의 집으로 몰려가 돌세례를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 200여명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고, 주모자로 지목된 학생 15명은 투옥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2004년 11월 23일 부산어린이대공원 내 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에는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이 건립되었다. 탑 좌우에는 항쟁하는 학생들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으며, 주요 참가자의 명단이 새겨져있다. 역동적인 동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당시 학생들의 애국심과 의연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난 23일 오전 11시에는 이 탑 앞에서 ‘제78주년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식’이 개최됐다. 부산 독립운동관련 서적을 주제로 열렸던 ‘부산항일학생의 날 기념 백일장’ 시상도 함께 진행됐다. 한편 부대행사로 광장에서는 ‘기념 사진전시회’가, 오후 2시부터 경성대학교에서는 일제강점기와 부산을 주제로 ‘전국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지난 18일에는 의거의 발생지인 구덕운동장에서 부산항일학생기념탑이 있는 어린이대공원까지 ‘학생시민 이어달리기’도 개최되어 학생 신분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는 항일정신을 보여준 그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처럼 ‘부산항일학생의거’는 민족 차별적 교육정책에 항거해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학생투쟁이었으며, 우리 선현들의 애국, 애족, 항일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의거였다. 모진 고문과 악행에도 두려움 없이 뜻을 펼친 학생들의 의로운 기운은 부산지역 학생 비밀결사 결성의 모태가 되어 이후 많은 학생들이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보여준 애국애족과 항일투쟁의 정신과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일이 많은 관심을 받아 시민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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