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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커버넌스] 옛이야기 가득한 돝섬·월영대·만날고개··· 최치원길서 즐기는 역사산책
  • 최성일 기자
  • 승인 2019.02.17 17:07
  • 입력 2019.02.17 17:07
  • 댓글 0
   
▲ 돝섬 전경. (사진제공=창원시청)
돼지해 맞아 돝섬 황금돼지상에 발길 이어져
출렁다리·해안데크 따라 곳곳에 볼거리 풍성
만날고개 전설 테마로 추석 다음날 축제 열어


[창원=최성일 기자] 경남 창원시가 올해를 ‘창원경제 부흥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경제 살리기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는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산업화·민주화 역사를 구심점으로 삼아 도시 성장의 뼈대 만들기에 나섰다.

시는 이와 연계한 ‘창원58열전’도 실시하고 있다.

창원58열전는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시는 15번째 지역으로 마산합포구 월영동을 소개했다.

<시민일보>는 시가 소개하는 마산 합포구 월영동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 황금돼지의 기운을 얻는 곳, 돝섬

마산합포구 월영동에는 한 해의 시작을 맞아 에너지를 얻기 좋은 곳이 있다. 바로 '돝섬'이다.

돝섬의 ‘돝’자는 돼지의 옛말인데, 황금돼지해가 밝으며 돝섬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돝섬을 부흥시키기 위해 창원시가 입구를 새롭게 단장하고, 돼지 캐릭터 모양의 포토존도 설치했다. 포토존 오른쪽으로는 그 유명한 황금돼지상이 있다.

이 돼지를 품에 안으면 부자가 되고, 돼지코를 만지면 복이 두 배로 들어온다는 말이 있어 돼지상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돼지상을 지났다면 섬을 찬찬히 둘러보자.

돝섬에는 40여년 전까지 사람들이 살았다. 1973년 내무부의 도서지에 의하면 돝섬 인구는 26가구, 127명, 분교생은 13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80년대 들어 국내 최초의 해상유원지로 꾸며지면서 정상부에는 하늘자전거가 돌아다니고, 유원지의 상징인 바이킹도 들어섰다. 서커스장과 동물원이 운영되기도 했다.

돝섬을 처음 방문한 외지인들에겐 잘 그려지지 않는 풍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돝섬은 화려하고 시끌벅적하기보다 수수하고 낭만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출렁다리와 해안 데크를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면 곳곳에서 예술조형물과 시를 만날 수 있다. 

일조량이 많고 따뜻한 지역이라 일찌감치 동백꽃도 만개했다.

그런데 돝섬은 어쩌다가 이름에 돼지가 들어가게 됐을까.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가락국 왕의 총애를 받던 후궁 '미희'가 고향을 잊지 못하고 홀연히 궁을 떠났다.

신하들이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아내 환궁을 요청하자, 미희는 돌연 황금돼지로 변신해 무학산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그때부터 돼지가 백성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돌았고, 왕은 눈물을 머금고 돼지를 잡으라 명한다.

군사들이 황금돼지를 향해 활을 쏘자 한 줄기 빛이 내려와 섬을 비췄는데 그때 섬이 돼지가 누운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돝섬이라 불렸다.

신라시대에는 돝섬에서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가 들려 최치원이 활을 쏘자 소리가 잦아들었다는 전설도 있다.


■ 최치원이 들려주는 월영동 이야기

'월영동'에는 이렇듯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다. 무학산자락을 등지고, 품에는 마산만을 안고 있어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월영동은 법정동으로 해운동, 대내동을 포함하는데 이 모든 지명들은 신라시대의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과 관련이 있다.

최치원이 시를 짓고 노닐며 제자들을 가르친 '월영대(月影臺)'가 있는 곳이라 월영동이 됐고, '해운동(海雲洞)'은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라 불린 최치원의 자(子)에서 따왔다.

'대내동(臺內洞)'은 월영대 안쪽에 자리한 동네라는 뜻이다. 최치원은 벼슬을 버리고 해인사로 은거하기 전까지 창원에서 살았는데, 그게 1000년도 더 된 일이니 월영동의 지명에 그 세월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최치원의 흔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앞서 말한 월영대다. 

옛날에는 월영대 바로 아래에 2km에 달하는 백사장과 해안을 따라 우거진 솔숲이 있어서 합포만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35년 신포동 매립공사로 인해 바다가 육지로 변했고, 당시의 아름다운 경치가 사라졌다.

대신 지금은 월영대 바로 옆 경남대학교에 있는 인공연못 월영지에서 그 비슷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학생들은 '월영지'에 비친 달그림자를 벗삼아 사색하고, 댓거리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그 옛날 최치원이 그랬던 것처럼 나라의 정치적 혼란과 자신의 앞날을 고민한다.

무학산 둘레의 ‘최치원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무학산이라는 이름 역시 '학이 춤추는 모습 같다' 해 최치원이 명명했다고 한다.

창원시는 2015년 최치원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발자취를 따라 그의 인문정신을 되새기고자 최치원의 길을 조성했다. 

월영대에서 시작해 만날고개~무학산 둘레길~무학산 고운대~서원곡~창원시립마산박물관까지 이어지는 7.5km 코스다.


■ 그리운 이 만나는 만날공원

마산만과 맞닿은 해운동에서 월영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길이 점점 가팔라진다. 

무학산자락이 길게 뻗어 있어 지대가 높아지는데, 이 때문에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마산만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현동과 월영동의 경계에 있는 만날공원에서도 가슴 탁 트이는 전경을 만날 수 있다. 

돝섬은 물론이고, 날씨가 맑을 땐 마창대교 너머 진해해양공원의 솔라타워까지 보인다.

'만날공원'에도 여러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모녀상봉전설'이다.

고려 말엽 바닷가 마을에 살던 가난한 집 딸이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고개 너머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다.

엄한 시집살이를 겪으며 눈물겨운 세월을 보내다 어느 날 먼발치에서라도 친정집을 보려고 고개에 올랐다. 

때마침 시집간 딸이 보고 싶어 고개를 올라온 친정어머니와 만나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얘기다.

옛 마산시는 80년대 들어 만날고개 전설을 민속행사로 발전시키자는 여론에 따라 매년 추석 다음날부터 사흘간 문화행사를 연다.

50년대 전란 때는 피난민들이 연고자를 찾을 때 이곳에 오면 만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은 그리운 이가 먼 곳에 있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쉽게 닿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시대가 변했지만 그 옛날의 이야기와 감성은 입에서 입으로 고스란히 전해 내려온다.

매립공사로 인해 없던 땅이 생기고 돝섬은 몇 번의 변신을 거듭했지만, 월영동이 삶의 터전으로 사랑받는 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도 월영동에는 약 3만2000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최성일 기자  look7780@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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