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회담을 깸으로써 소련을 무너뜨린 레이건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 시민일보
  • 승인 2019.03.04 14:42
  • 입력 2019.03.04 14:42
  • 댓글 0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레이건은 1981년에 집권했을 때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소련 제국의 急所로 보았다. 자유노조 운동을 지원하면 동구 위성국들이 흔들리고, 東歐가 자유화되면 소련도 붕괴된다는 것이었다. 즉, 폴란드가 東歐공산권의 안전핀인데 이 안전핀을 빼버리면 東歐가 수류탄처럼 터지면서 그 파편이 소련을 때려 종국엔 소련마저 무너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1981년 12월15일, 폴란드에 계엄령이 선포된 이틀 후 레이건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이 사건은 소련의 對東歐식민지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기회이다”고 말했다. 

레이건은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긴밀히 협조해가면서 폴란드의 자유화 운동을 지원했고, 소련이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탄압하는 책임자라고 규정하여 對蘇 압박정책을 폈다. 소련은 폴란드에 무력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레이건은 이를 무시하고 소련을 압박함으로써 폴란드 등 東歐의 반체제 인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레이건은 1970년대의 데탕트 정책, 즉 對蘇유화정책을 뒤엎는 對蘇강경책을 지속하려면 국내의 지지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減稅에 의한 경기회복에 성공하여 지지층을 단단히 했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對蘇비판 연설을 통해서 보수층을 단결시켰다. 그런 다음 군비증강 정책을 밀어붙여 소련이 出血 경쟁을 하도록 유도했다. 레이건은 1970년대의 소련이 高油價의 득을 많이 보면서 경제 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 군비지출을 많이 했고, 越南赤化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군사적 모험주의로 해서 경제가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소련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소련 체제를 붕괴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산권 붕괴의 功을 레이건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대처는 레이건 대통령이 우직하게 밀어붙인 이른바 '별들의 전쟁 계획'(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 소련제국 붕괴를 가져온 결정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SDI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을 가리킨다. 
  
미국이 사람을 달에 착륙시켰던 그 국가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별들의 전쟁' 계획, 즉 미사일 방어망 연구를 시작하려고 하자 소련 지도부는 겁을 집어먹었다. 미국과 맞서 그런 미사일 방어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소련의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국가財政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부문의 무기개발에 들어갈 돈도 이 대응조치에 전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그 이후 소련의 對美 정책은 총력을 다해서 SDI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레이건은 소련의 이런 초조한 자세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SDI를 더욱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척했다. 미국 과학자들도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核미사일 방어망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이건은 모른 척하고 이 계획을 밀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 수상에게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계획을 밀고나간다면 소련의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즉 군비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이는 미국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우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對美우위의 군사력만이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개혁을 거부하도록 한 마지막 보루였으니까. 그런 근거가 무너지면 비로소 경제개혁으로써 국민들을 먹여살릴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1986년 10월11~12일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아이슬랜드의 레이캐빅에서 頂上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전략무기 감축과 관련하여 양보를 거듭했다. 고르바초프는, 중거리핵미사일 감축 협상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미사일은 제외한다, 美蘇 양쪽이 모두 똑 같은 숫자의 戰略무기를 남길 수 있도록 감축한다(그 전에는 현재 보유비율에 따른 감축을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소련이 더 많은 숫자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레이건도 5년안에 전략핵무기-대륙간 탄도미사일, 폭격기, 장거리 크루즈 미사일을 반으로 감축하고 10년 뒤에는 대륙간 미사일을 전부 폐기하자는 제안을 했다. 고르바초프는 한술 더 떠 10년 뒤에는 모든 戰略무기를 폐기하자고 했다. 
  
레이건은 10년내에는 ABM(장거리미사일요격망 건설 금지)조약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조약과 위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SDI 실험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때 고르바초프가 그동안의 양보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함정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소련이 제안한 양보는 조건부이다. 즉, 미국이 SDI 개발계획을 실험실에서만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SDI를 단념시키기 위해서 그동안의 파격적 군비감축안들을 제안했던 것이다. 레이건은 주저 없이 고르바초프의 이 제안을 거부했고 頂上회담은 결렬되었다. 세계의 언론은 레이건을 공격했다. 세계 평화에 巨步를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다면서. 재미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가 레이건의 양보를 얻기 위해서 제안했던 군비감축안들을 거두어들일 수가 없게 된 점이다. 소련은 그 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들 제안을 토대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끼만 떼인 결과를 낳았다. 
  
고르바초프 회고록에 이 레이캐빅 회담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그는 레이건과의 마지막 담판은 '세익스피어의 드라마' 같았다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중단했다가 다시 만나 이야기하다가 다시 헤어지곤 했다. 회담의 성공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SDI는 넘을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 대화는 돈좌하더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레이건은 말했다. '조금만 더 양보하여 내 안을 받으세요, 그러면 미국은 소련과 협조할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득이 되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요'. 나는 거의 절망적으로 그를 설득하려고 다가갔지만 그는 한 걸음 뒤로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는 평화를 만든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텐데.'
  
회담이 결렬되어 두 사람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레이건은 고르바초프를 향해 불평했다.
  
'귀하가 이렇게 계획해서 나를 이 지경에 빠뜨렸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지금 당장 회담장으로 돌아가서 사인합시다. 귀하가 우주를 군사화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한다면 말입니다.'
  
'정말 미안하군요.'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이건은 SDI를 추진할 때부터 대처 수상에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배우시절 좌익과 대결하면서 공산주의의 속성을 체험했던 레이건의 이 무서운 일관성이 소련군사제국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그 길은 공산권 해체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출처 : 조갑제닷컴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저작권자 © 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민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HOT 연예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