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지역소식 인서울
용산의 애국선열 ‘의병장 강기동’ 재조명
  • 고수현 기자
  • 승인 2019.04.16 14:19
  • 입력 2019.04.16 14:19
  • 댓글 0
3.1운동 100주년 맞아 용산구소식 특별기획 게재
당시 신문기사 통해 선생의 마지막 모습 재구성해


[시민일보=고수현 기자] 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이달 구 소식지 ‘용산구소식’에 의병장 강기동 선생(1884~1911) 관련 글을 게재했다.

구는 2017년부터 구 소식지에 용산기지의 역사문화유산을 매달 한 꼭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강 선생의 글은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게재했다고 16일 밝혔다.

‘용산기지의 역사’는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연재물의 하나로, 2017년부터 현재까지 기지내 문화유산과 자연물 18곳을 소개했으며, 인물 소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강 선생의 최후를 새롭게 그려봤다”며 “선생외에도 많은 한국인이 위수감옥에 수감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장현 구청장은 “강 선생은 후손도 남아 있지 않다”며 “용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애국선열인 만큼 우리 구민이라도 선생의 아들딸이 돼 그를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강 선생은 1884년 서울 명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진주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일본군 헌병보조원으로 발탁돼 경기도 양주군에 위치한 고안헌병분견소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이때 의병 2명이 일본 경찰에 붙잡혀오자 강 선생은 이들을 탈주시키고 본인도 의병장 이은찬(1878~1909)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들어갔다. 이후 경기도 포천·양주 등지에서 활약을 했다.

1909년 9월부터 시작된 ‘남한대토벌’ 작전을 피해 북간도로 이동하던 강 선생은 결국 1911년 2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이어 서울에서 조사를 받고 용산 군사령부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선생의 재판에는 아카시(明石) 조선총독부 경무총장을 비롯한 거물급 인사들이 두루 입회했다. 아카시는 의병탄압과 무단통치의 주범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일본군에 의해 28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한 강 선생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다.

고수현 기자  smkh86@siminilbo.co.kr

<저작권자 © 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수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HOT 연예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