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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반대인 핀란드의 지도자 매너하임 이야기
  • 시민일보
  • 승인 2019.06.12 16:01
  • 입력 2019.06.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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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한국인들이 우리 국민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단어가 '恨(한)'과 '신바람'이듯이 핀란드 사람들은 '시수'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핀란드語인데, '배짱' 또는 '견디기'란 의미가 들어 있다. 이는 핀란드의 역사를 반영한다. 핀란드는 極限(극한)의 자연환경과, 이웃한 두 강대국 스웨덴, 러시아 사이에서 핍박과 설움을 견디며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내고 드디어 세계 최고 국가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고생을 많이 한 핀란드 사람들은 과묵하다. 친한 사람들끼리 사우나에 들어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경우가 예사이다. 휴대전화의 메시지 기능은 말을 하기 싫어하는 핀란드 사람들이 발명한 것이란 농담까지 있다. 우직한 사람들이다. 

한 번도 독립하지 못하고 스웨덴과 러시아의 속국으로만 있었던 핀란드가 독립국가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는 러시아 혁명의 主役(주역) 레닌이었다. 그는 帝政(제정)러시아 시절 혁명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시베리아에서 流刑(유형)생활을 할 때 감방동료인 한 핀란드人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레닌은 핀란드로 탈출, 숨어지내기도 하였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때는 페테스부르크(나중에 레닌그라드로 개칭)와 핀란드를 오가면서 모의를 하였다. 러시아 공산혁명 이전부터 핀란드가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다녔다. 

1917년 11월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직후 핀란드 의회가 독립을 선언하자 레닌은 러시아 정부가 신생 정부를 승인하게 하였다. 러시아는 독립 핀란드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기를 원하여 핀란드內 공산주의자들을 지원하였다. 1918년 핀란드에선 親러시아 공산세력과 親독일 민족세력 사이에서 內戰이 일어났다. 108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약 3만 명이 죽었다. 매너하임 장군이 지휘하는 민족파의 白軍이 승리, 立憲(입헌)군주제를 선택하였으나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항복하자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핀란드의 建國과 세 차례 전쟁을 지도한 인물은 칼 구스타프 에밀 매너하임 장군이다. 그는 터키의 國父(국부) 아타 투르크(케말 파샤)를 닮은 드라마틱한 생애를 산 위인이다. 그의 父系는 독일, 母系는 스웨덴人이었다. 증조부는 핀란드 수상을 지냈고 아버지는 극작가 겸 기업인이었다. 러시아가 핀란드를 지배하고 있을 때 러시아군의 기병장교로 복무하였다. 러일전쟁에도 참전, 대령으로 봉천會戰(회전)에서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러시아 군 정보부서의 요청을 받고 1906년부터 3년간 고고학 조사단원으로 위장하여 중앙아시아 신강 티벳 북경 등 중국 全域을 여행하면서 청 나라의 실태를 조사하였다. 1차 대전 때는 러시아 기병부대를 지휘하였다. 1917년 2월 혁명이 났을 때는 기병군단장(중장)이었다.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하였을 때 노동자 세력은 사회주의를, 자본가 농민 상공인들은 자본주의를 원하였다. 양쪽이 內戰을 벌이자 매너하임은 後者의 白軍을 지휘, 赤軍을 물리쳤다. 그는 독일이 항복한 이후 王政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출범하는 과도기에 섭정을 맡았다.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핀란드가 국가승인을 얻는 데 기여하였다. 이 시기 일부에선 그를 王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19년부터 1939년 소련군의 침공이 있을 때까지 20년간 매너하임은 公職(공직)을 맡지 않았으나 국방력 건설에 자문을 해주고 핀란드가 內戰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國論을 통합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는 탐험과 여행을 좋아했다.
1939년 11월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군이 핀란드를 침공하였다. 조국은 그를 다시 불렀다. 자신으로선 네 번째 참전이었다. 핀란드 총사령관이 된 그는 60만 대군을 상대로 잘 싸웠다. 핀란드의 스키 부대는 게릴라 전법으로 대항하였고, 소련군 戰車에는 '몰로토프 칵테일'이란 별명이 붙은 화염병으로 저항하였다. 1940년 3월 소련과 핀란드는 모스크바 협정을 맺고 휴전하였다. 핀란드는 국토의 상당부분을 빼앗겼으나 國體(국체)를 보존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소련이 휴전 이후에도 추가적 요구를 하자 핀란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였다. 

1941년 6월22일 나치 독일군이 소련으로 쳐들어가면서 獨蘇(독소)전쟁이 일어났다. 開戰 전에 핀란드는 自國내에 독일군이 들어와 공격을 준비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소련이 초전에서 밀리자 핀란드는 失地(실지)를 회복하려고 독일 편에 서서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939년의 전쟁을 '겨울전쟁', 1941년 전쟁을 '연장전'이라고 부른다. 매너하임은 이번에도 핀란드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히틀러는 매너하임을 존경하여 핀란드 주둔 8만 독일군의 지휘권을 맡아줄 것을 매너하임에게 간청하기도 하였다. 매너하임은 독일 편에서 싸웠지만 선을 그었다. 소련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데만 참전 목적을 두었다.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벌일 때도 핀란드 군이 합세하지 못하게 하였다. 

1942년 6월4일은 매너하임의 75세 생일이었다. 히틀러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비밀리에 핀란드를 방문하였다. 매너하임은 히틀러를 그의 사령부나 헬싱키에서 맞이하면 공식적인 성격의 회담으로 비쳐질까 신경을 써 지방 도시에서 만났다. 핀란드 측은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매너하임과 히틀러의 私的(사적) 대화를 비밀녹음하였다. 히틀러는 매너하임에게 對蘇戰에 더 적극적으로 참전할 것을 권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1944년이 되면 소련이 독일군을 밀어붙이고,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 핀란드가 '지는 쪽'에 줄을 선 것이 확실해졌다. 매너하임과 핀란드 국가 지도부는 어떻게 하면 독일과 잡은 손을 떼고 소련과 휴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들은 매너하임만이 이 難國(난국)을 헤쳐갈 수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하였다. 핀란드 지도부는 매우 지혜로운 전략을 썼다. 소련군이 핀란드를 공격하자 우선은 독일과 동맹조약을 맺고 독일군의 도움으로 국토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동맹조약에 서명하였던 대통령이 사임한다. 그를 이어받아 매너하임 장군이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前任(전임) 대통령이 서명한 조약을 무효화시키고 소련과 휴전회담을 시작, 한 달 뒤 휴전이 성립되었다. 핀란드는 일부 國土를 소련에 넘기고, 전쟁 배상을 하기로 하였으나 國體(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보존을 약속받았다. 소련 편에 서게 된 매너하임은 총부리를 돌려 한때의 동맹국이던 독일군을 핀란드에서 쫓아내는 전투를 벌이게 된다. 

소련 등 연합국의 승리로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매너하임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였다. 연합국 중 아무도 매너하임을 戰犯(전범)으로 재판하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는 스탈린 덕분이었다. 스탈린은 1947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핀란드 대표단을 맞아 '소련군이 핀란드를 점령하지 않은 것은 매너하임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매너하임은 히틀러와 스탈린으로부터 동시에 존경을 받은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1946년 3월4일 대통령직을 사임한 그는 1951년에 사망하였다. 84세였다. 

핀란드는 소련에 대한 전쟁배상을, 기계류와 조선 등 물품을 통하여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기계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轉禍爲福이 된 셈이다. 핀란드는 냉전시기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소련에는 유화적인 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란드 정부는 정치적인 人事에 대하여는 사전에 소련 정부와 상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國益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소련 또한 핀란드인들의 투지와 自立정신을, 두 차례 전쟁을 통하여 절감하였기에 무리한 압박을 하지 않은 덕분이다. 

1989~1991년 소련 해체기에 핀란드는 재빨리 발틱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승인하는 등 脫소련 정책을 선택하였다. 매너하임 기념관은 헬싱키 시내에 있다.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을 방불케 하는 하나의 聖地이다. 매너하임은 최근 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핀란드인'으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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