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카운트테너 '루이스초이!'편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19-06-17 17:20:1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소프라노 가수에게 노래를 배운 남자.

당연 소프라노 처럼 노래했다.

가능한 일일까? 여성의 최고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는 남자가수가 드물게 있기는 하다.

카운터테너 '루이스초이!'

그는 '카운터테너'다.

옛날, 유럽에서는 거세한 중성의 남자아이를 훈련시켜서 '카스트라토'라는 이름으로 여성 음역대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오늘날은 그 음역대를 정상적으로 감당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가수를 '카운터테너'라 칭한다.

그러나 '완벽한 남자의 몸으로 소프라노의 음역대를 감당하는건 특별한 '소명'이 있거나 '돌연변이 일거다.'라는 말에 보통사람들은 대개 동의한다.

'돌연변이'라는 말이 막연히 동물적이거나 생물학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어서 조심스럽긴 한데 ...

''제가 '돌연변이'인거 맞아요.여러가지로 ''

아무렇지도 않게스스로 '돌연변이' 캐릭터라고 말하는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걸까?

''제가 원래 '육상선수' 였거든요. 제가 100미터를 12초 대로 뛴게 초등생 때였으니까 '천재 스프린터' 로 떴었지요.''

그러던 그가 지금은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가 되었는데 대한민국의 '카운터테너' 중에 거의 최고의 존재라고 평가를 받는 이 남자 '루이스초이'는 전형적인 '촌놈'이다.

2019년, 오늘, 대한민국의 오페라,뮤지컬,등을 넘나들며 크로스오버의 독보적인 영역을 지배하게된 그의 본명은 그의고향 '충남서산' 내음이 물씬나는 '최경배'다.

그러나 그의 현위치와 말끔한 얼굴과 귀티나는 턱선, 해리포터 닮은 총기있는 눈빛을 보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크라식 음악계의 금수저 일 것이라 확신했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물론 그가 이영자나 최양락처럼 모든 말끝에 '유!' 를 붙이지 않기 때문 만은 아니다.

촌티를 털어내려 연습해서 그런건 아니고 생존을 위해 독일어를 씹어먹듯 하면서 착한 '서산말'들이 갈려 나갔단다.

올해, 43세가된 정상에선 가수 카운트테너 루이스초이!

대한민국의 뮤지컬, 오페라등, 크로스오버 업계에서 화제작들의 주요 캐릭터들을 섭렵하고 공영방송인 교통방송에 고정출연까지 꿰어차고 있다.

그런 이유로 세간에 '루이스초이의 금수저론'이 점차 확신일로에 있다.

'서산의 졸부아들이 '체육특기생'으로 실패하고 독일 유학을 갗다오더니 여기저기 바람잡고 다니다가 돈빨로, 운빨로 그리 됐다네 '

시기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 본 사람들은 대개 그런류의 입방아에 동의를 하기도 했다.

정말 그런가?

43세인 그의 지금 나이보다 훨씬 어린 39세에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서산에서 소소한 건축 일을 하시다가 39세의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 할 새도없이 오직 생존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지요. 눈물 흘리고 다니는게 사치스러운 일이 었어요.'

빨리 달리면 행복해 지는 줄 알았던 육상선수 최경배는 예측 불가능한 세상의 속도에 질려 이탈하고 만다. 지리한 장마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방황의 끝에서 만난 음악은 그의 눈물과 한숨을 품어주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군포고등학교시절, 음악 선생님이 그의 음악적 감성을 발견하고 테너 임권묵에게 렛슨을 받게한다.

'렛슨이라는 말은 너무 호사로운 말이지요, 그냥 수업받고 배고플때 밥 얻어먹고 잠잘데 없으니까 그냥 선생님 댁에서 자고... 참 뻔뻔했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하하하!'

슬픈 얘기도 웃으면서 거침없다.

그의 씩씩한 웃음 속에서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 의 커다란 눈망울이 자꾸 떠오른다. 울고 싶을때 많이 웃었다고...

만화영화 속의 하니는 열세살 중학생때, 엄마를 잃었고 최경배는 아버지를 잃었다.

'하니'는 하늘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며 달렸고 최경배는 지구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며 달리기를 포기했다.

'달리기를 포기하고 노래에 매달렸는데 내 노래를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또 외로웠지요. 그때, 테너 임권묵 선생님에게 성악기초를 배우고 배제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 했어요.돈주는 학교에 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노래 정말 열심히 했어요. 육상선수 할 때 훈련 하듯이, 그런데 군대 동기가 '너 참 재수없다!' 그러는 거예요 '왜 조수미처럼 노래하냐?'고요.

'카운터테너'가 뭔지 가르쳐 준건 그 친구였어요. 무슨 옛날 영화에 카운터테너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그래서 노프라노 박혜순 선생님을 사사하고 본격적인 '카운터테너' 공부를 하러 독일로 갔지요.'

초등학교 음악선생이던 최경배는 씩씩한 여자를 만나 '인생역전'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한다.

''제가 고생고생해서 선생이 됐고, 나름 오랜만에 안정이 됐는데 결혼과 유학 이라는 사건이 '동시상영'으로 일어나 버린거지요.

'무서운 여자?'를 만났거든요.하하하!''

스물아홉살이 된 2005년, 9월 10일,결혼을 감행하고 13일 후인 9월 23일 독일 유학 길에 올랐다.

마치 상륙작전을 하듯이 치뤄낸 결혼과 유학은 이제는 마흔이 된 아내 김은정의 작품 이었다.

지금 마흔살이 됐지만 절대로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이처럼' 살지않는 그의 아내는 그때, 최경배에게 다시한번 '하니처럼' 달리기를 원했고 그 결과로 오늘의 '루이스 초이'가 있다.

물론 그녀는 14년전 계획대로 '루이스초이 아카데미 뮤직홀' 대표가 되어있다.

''정말, 전쟁같은 시간들 이었지요. 그 사이에 아이 둘을 키웠어요. 열살, 열두살인 루빈,루아를 어찌 키웠는지 '으아!'정말 우리 애들은 전쟁터에서 큰거지요. 하하하!'

아무리 어려운 얘기도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루이스초이',아이들과 아내 얘기를 할때는 해리포터를 닮은 눈동자에 물기가 촉촉해진다.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뒤셀도르프 국립 음악대학에 입학 할때를 생각합니다. 실기시험에서 떨어지고 '이제 나가보라!' 고 했을때, 독일어도 아닌 나도 알 수 없는 말로 다시한번 해보겠다고 애걸 했었어요. 결국 시험장에서 쫒겨났고 끔찍한 심정으로 커다란 철문앞에 서성일 때,
그 학교의 전속 가수이며 가장 영향력있는 교수인 '알렉산드르 이오니짜'가 친히 달려나와 저를 불렀지요. '하이! 꼬레안!' 구원의 목소리 였지요. 제가 다시 시험장에 불려가서 노랠 했어요. 정말 신들린 듯이 춤까지 추면서 노랠 했어요. 눈물도 나고 서산바닷가도 보이고 아버지의 화난 얼굴도 엄마의 눈물도 아내의 안타까운 한숨소리도...''

그러면서 또 웃는다 ''하하하!''

''그래서 내가 이겼잖아요. 정신없이 노랠 하는데 모두 다 박수를 치고 있는거예요 . '이제 됐다!'고 '그만 해도 된다!'고 내가 잘 안우는데 그때 많이 울었어요''

세상과 싸워서 이길때만 눈물을 흘린다는 루이스초이!

그 뒤에 눈물흘릴 일을 많이 격었던 그에게 그의 꿈을 물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요 . 언젠가 아이들한테 돌아 가야지요.

저 처럼 외롭고 괴로운 삶을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서 꿈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그런 그의 마음이 노래에 실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닿는가보다.

독일 'DAAD'장학생에 선발대회에서 수상하고 독일 라이온스 국제 성악 콩쿨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의 권위있는 바로크 음악제등의 상 등을 휩쓸고 한국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갔다.

세계 한류대상, 서울 뮤지컬 어워즈 신인상, 더뮤지컬 어워즈 남우 신인상을 차지하고 국립 오페라단의 '아랑'에 캐스팅 되어 진가를 발휘했다.

세상과 싸워 이긴 그 발자욱마다 이길때가 아니면 눈물도 흘리지않는 그의 눈물방울들이 맺혀 빛났다.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악대학 에서 아시아 출신 최초로 공식 카운터테너 가수로 인정받은 그는 한여름밤의꿈, 헨젤과 그레텰, 어린왕자 등에서 캐릭터들에게 빛나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연기와 연주를 보여 '역시! 루이스초이!'라는 감탄사를 확인케했다.

그 감탄사의 답이되는 그의 음원들 역시 바람같이 팔려 나갔다.

기억의서곡, 봄,여름,가을을 노래한 사계와 뮤지컬 '파르넬리' ost 등 이정도면 루이스초이는 매일 울고 디녀야 마땅한데...

'그럼요. 맨날 울지요. 내가 늘 이기니 까요! 하하하!'

100m를 12초에 뛰던 서산의 초등학생 최경배는 이제 '루이스초이'가 되어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 소리로 노래를 한다.

그의 높은 노래소리가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그 소리가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뭘까 이 느낌은 ?

'제가 서산 촌 놈 이잖아요. 서산 앞바다에다 노래를 풀어 놓으면 젤 낮은 바다로 흐르거든요.'

'나보다 더 낮은 곳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나눠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루이스초이 아카데미 뮤직홀'을 열었다.

거기서 그는 노래가 아니라 '마술'을 보여주고 싶은거다.

세상을 향해 희망을 쏘아 올리는 마술사 해리포터처럼!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