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배우 이덕화 편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19-06-25 0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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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처럼 사는 남자!


TV 카메라 앞에서면 늘 '부탁해요!'를 입에 달고사는 남자 이덕화!

그는 사실 아무게도 부탁을 하지 않는다. 그대신 스스로 좀더일찍, 좀더많이, 좀더빨리 움직인다. 왜냐하면 그는 장애3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장애가 있으니까 남들하고 많이 다릅니다. 반응속도도 차이가 있고 동작도 좀 느리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남들하고 좀다르게 살지요. 약속시간은 무조건 30분 전에 도착, 대본은 외우지 않고 먹어버린다. 먹어버린다라는 말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네요. 대본을 처음엔 읽고 그 담엔 외우고 다 외워지면 잘 씹어서 먹어버립니다.(진짜로 먹는다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면 무당 작두 타듯이 가는겁니다.
연습은 상대역 때문에 하는거지요.''

반항끼 넘치던 20대 때, 청춘물을 찍으며 종횡무진 충무로를 휘돌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대형 사고를 냈다.

중구의 필동성심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그는 '회생불능' 상태로 판단, 사망 선고를 받게되는데 영안실로 옮기기 직전, 도착한 친구김보옥이(후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보호자? 로 살고있음) '이덕화는 절대로 죽지않아!'를 반복하며 난동을 부려 다시 응급소생술을 반복, 이덕화의 멈춰있던 심장을 깨워냈다. 무서운 분이다.^^

''며칠만에 깨어나 보니 온 몸이 전국적으로 성한데가 없었지요. 딱 얼굴만 말짱 했어요, 배우 이외엔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었지요. 헌데 온 몸을 묶어놓은 의사들은 날보고 평생 누워서 살라는 겁니다. 상태 좋아지면 휠체어나 목발을 짚을 수도 있다고... 그러더니 날 중환자 실로 밀어 넣었는데 하필 문앞에 침대를 놓길래 불편하다 했더니 쓱 처다보고 암말도 없이 가버리는 거에요. 나중에 알았지요. 그 방에 있던 여덟명 중에 내가 사망확률1위 였던 겁니다. 문앞에서 바로 침대를 빼야 하니까...''

수많은 수술을 거치며 사선을 오락가락 하는 동안, 그 병원에 함께 입원해 있던 아버지 '이예춘'의 장례를 지켜보아야 했던 그는 후에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어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로 무대를 적셨다. 그덕에 그 공연은 유례없던 초대박 롱런 공연으로 기록을 세우기도했다.

그때, 언제든 영안실로 실려 나갈 확률 1순위 였던 그는 제일 안쪽 창가에 있는 그 환자를 부러운 경쟁자로 지목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생존게임을 결정했다.

이덕화는 ''반드시 저 창가자리까지 도착해서 반드시 살아 나가리라!'' 결심하며 의지를 다졌다.

그 의지로 2년 8개월만에 병원 문을 나선 이덕화는 상태가 아주좋아져서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그는 즉시 선배의 별장이 있는 만리포를 고집했고 만리포 별장에서 그는 매일 해뜨는 시간에 혼자 외출을 했고 해질 무렵 혼자 돌아왔다. 물론 휠체어 없이 기어서...

그렇게 한계절이 지나던 어느날, 외출할때, 기본 두사람의 보호자가 필요 하다고 판정한 '장애3급'과 상관없이 이덕화는 두 다리로 그동안 기어서 다니던 만리포 해변을 주춤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그 이후에도 '알 수 없는 일!' 이라는 말 만 반복했다.

이덕화는 그렇게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서...

81년, 이덕화는 그렇게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버라어티 쇼 '쇼2000'은 '이덕화 보여주기'에 적합한 쇼였다.

반항끼로 세상을 질주하던 이덕화가 돌아와 쇼2000을 최고의 쇼로 만들며 스스로를 불세출의 스타로 밀어 올렸다.

그때, 그가 세상을 향해 외쳤던 '부탁해요!'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마술의 주문이었다.

정말 뭔가를 보여줘야 할 타임 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동일한 소망을 가진 이가 있었다. 이주일 ,그리고 조용필 , 쇼2000을 핑게로 세명은 매일새벽에 만났고 늘 술을 마셨다.

정상의 자리에 올라있던 그들은 똑같이 외로운 처지였던 거다.

이주일은 입버릇 처럼 투정을 했다.

''덕화야 용필아 니들도 알지만 내가 이나이까지 룸싸롱을 제대로 가봤겠냐? 해외여행가서 닐니리 하고 다녀보길 했겠냐? 그거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우리가 왜 이렇게 숨어서 술 마셔야 되냐고, 닝기리! 뭔가 한 번 보여줬으면 우리도 신나는 일이 있어야 될거 아니냐고?''

''형 ! 그건그래, 우리가 맘놓고 뭔 짓을 할 수가 없다 .정말!''

조용필은 그때도 말없이 술 만 마셨다.

그렇게 이덕화는 다시 돌아오자마자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이어 93년, 영화 ''살어리랐다!'' 주연으로 이덕화는 급기야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해외 영화제 남우 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1935년에 시작된 전통의 동유럽 최초영화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이덕화는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되고 그 공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게된다.

''배우는 좋은 배역을 받는게 최고 훈장입니다. 나를 완전히 몰입시킬 수 있는 매력있는 캐릭터를 만나는 일이 정말 행복이지요. 그래서 저는 배우로 사는 일이 행복 합니다. ''

그러나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다. 참으로 질긴 인연의 끈이 그를 예상치 못한 길로 인도한다.

1991년 일어난 LA 흑인폭동으로 초토화된 한인사회의 재건을 위한 LA위로공연에 참가한 이덕화는 공연장에서 초등하교 짝이었던 여자친구를 만나고 그녀의 부탁으로 그의 아버지를 돕게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통령이 된 김영삼 이다.

그 연으로 이덕화는 국회의원 출마를 하게되는데,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고 제자리로 돌아간 그는 자서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 라는게 생선 같은거지요. 영양가 있는 꽁치, 맛있지만 날카롭고 성깔있는 칼치, 부드럽고 기름진 참치 그리고 썩어도 준치라고! 하지만 아무리 준치라도 썩었으면 버려야지요.''

''정치는 생선이다!'' 라는 그의 연설은 한때 신선한 느낌으로 대중을 흔들기도 했다.

''내가 말은 그렇게 했는데 내가 그리 신선도가 높은 생선은 이니었나 봐요.컬컬컬...''

그의 탁한 웃음소리가 쓸쓸하다. 그 이후로 만 6년동안 오직 낚시를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이덕화의 낚시숙소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낚시터 관리인처럼 완장차고 물가를 떠도는 형님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은 이덕화는 다음날, 눈물바람을 하며 낚시가방을 챙겨 서울로 올라와서 다시 배우로 다시 살기 시작한다.

''전성기의 배우가 바닷물에 떠있는 찌만 바라보며 만 6년을 보냈는데 그 후배의 편지가 나를 울렸지요. 그 편지 중에 '무사와 칼 든 정육점 주인과는 인생관이 다르다!'는 말이 나를 확 깨우더라고요.배우 이덕화로 다시 살 준비를 하고 '제5공화국' 에서 남들이 다 말리는 '전두환장군' 역할을 시작했지요. 저는 배우로서 그 배역을 그야말로 완벽하게 소화 했다고 자부합니다"

6년 간의 낚시꾼 생활을 하던 그가 돌아와 남들이 꺼리던 그 배역을 맡자 사람들은 ''오죽하면'' 이라며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번째 방영 이후부터 ''역시 이덕화!'라는 찬사가 압도하기 시작했다.

낚시터에서 혼자 바닷물 속에 쏟아내던 배우 이덕화의 열정은 사람들의 격한 공감을 일으키며 그의 존재를 각인 시켰다.

150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고 쇼의 대명사였던 '쇼2000' 부터 '토토즐' 까지 10여년을 진행했던 그의 내공은 짐작하기 어려운 고통과 함께 였음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극촬영을 많이 했던 그가 말을 타고 달리던 도중 말에서 뛰어내린적이 있다.

사고 때 입은 상처로 근육이 없는 상태서 장기간 말을 타다가 골반뼈가 엉덩이 살을 뚫고 나온 탓이다.

다행히 마지막 촬영 날이었다.

''무슨 소리 합니까? 마지막 촬영이 아니고요 그 날 까지 참고 찍은 겁니다. 죽을 줄 모르고... 뼈가 뚫고 나와서 말 안장을 찌르고 있었다니까요. 미친놈 입니다. 이덕화는...''

현장을 본 사람들은 다 들 그렇게 말했다.

촬영 끝난 날 까지버티던 이덕화는 서울대학교 성형외과 과장 민경원박사에게 끌려가서 등짝에 붙은 손바닥 만한근육을 떼어내 엉덩이에 밀어넣는 수술을 하게된다.

''두달동안 엎드려서 씩씩대고 있었지요.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어찌살까 싶습니다. 나는 의사지만 저렇게 되면 저는 수술 안하고 안아프게 살고 말지요. 걸어다니는것도 알 수없는 일 인데 승마에다 축구에다 , 자해를 하는건지... 뭔 짓인지 모르겠어요''

최악의 환자 이덕화에게 늘 화가 난다는 민박사는 ''의사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헌데 환자도 할 말이 있다는데 ''의사선생님은 배우가 뭔지 몰라요. 배우는 총맞아 죽는 배역이 있고 총 맞아도 안 죽는 배우가 있거든요. 난 안죽는 배우라니까요 컬컬컬''

''보면몰라요? 내가 낚시꾼으로 6년 물 푸고 살았는데 지금은 낚시꾼으로 출연을 하라잖아요? 나처럼 오직, 낚시연습 6년 하고 낚시꾼으로 출연 하는사람 어디 있습니까?''

낚시외에 그가 국내에 있는 한 절대 빼먹지 않는 일정이 있다.

축구다! 축구장에서 그 몸 으로 축구를 하다보니 때때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언젠가 후배가 축구화를 매주는 사진을 내놓고 후배들에게 축구화 끈을 매게 하는 '이덕화갑질' 이라는 오보를 냈다가 정말 맞아죽을 뻔한 기자가 있었다.

''덕화형이 웅크리고 앉아서 축구화를 못매거든요. 그래서 누군가가 매줘야 되는거지요. 그 친구가 뭘 몰라서 혼났지요.''

세상의 상식을 꺾으며 살아온 배우 이덕화는 무엇을 꿈꾸며 사는 걸까?

''배우가 무슨 다른 꿈이 있나요? 배우로 사는게 꿈이지요. 카메라가 들어올때만이 아니라 늘 배우처럼 사는거지요. 배우처럼 먹고 배우처럼 마시며 배우처럼 걷고 뛰고 그러다가 배우처럼 죽겠지요!''

배우 이덕화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냥 배우다!

사람들은 기역자로 허리가 굽은 노인을 보면서 허리가 기역자로 굳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오류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리는 언제든지 꼿꼿이 펼 수 있다. 그런데 왜?

허리를 펴면 아프기 때문이다. 굳어진 근육과 힘줄이 당겨 엄청난 고통이 오기 때문이다.

배우 이덕화는 그 고통을 무시하며 꼿꼿이 허리를 펴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 밖에서는 누구에게도 '부탁해요!' 라고 말하지않고 홀로 삶을 연기하는 진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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