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vs. 삼봉 정도전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5-11 11: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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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에 비유했다.


대통령을 왕조시대 군주에 비유하는 것이 참으로 가관이다. 더구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피의 숙청을 단행한 태종이라니 가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종(1400~1418 재위)이 누구인가.


그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집권한 이방원이다. 고려의 신하 정몽주를 살해하고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마저 척살하는 등 사방에 피를 뿌렸고, 그 피의 대가로 왕좌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보좌관 출신이자 친노 핵심 인사로 꼽히는 이광재가 문 대통령을 그런 ‘태종’에 비유한 것이다.


태종의 맞수는 ‘민본사상’을 주장하는 삼봉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지방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들녘에서 한 농부를 만났다고 한다. 그 농부가정도전에게 당시 관리들이 ‘국가의 안위와 민생의 안락과 근심, 시정의 득실, 풍속의 좋고 나쁨’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헛되이 녹봉만 축내고 있다며 질책했고, 그의 발언은 정도전으로 하여금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가’를 다시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 경험이 정도전의 ‘민본사상’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고, 그가 쓴 책 ‘조선경국전’에 그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 ‘조선경국전’에서 특히 정도전은 자신이 꿈꾸던 요순시대를 건설하기 위한 거대한 정치 구상을 제시했다. 요순시대처럼 임금과 신하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를 전면적으로 표방했던 것이었다. 오늘날의 ‘협치’에 해당하는 사상을 일찌감치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봉 정도전은 오늘 날 전남 강진에서 촌로들과 생활하다가 정계복귀 일성으로 7공화국의 기치를 내걸었던 손학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왕권을 강화하려는 태종 이방원이 대통령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민본사상을 내건 삼봉 정도전은 협치를 위한 7공화국의 깃발을 내건 손학규라는 것이다.


물론 이방원과 정도전의 싸움에서 이방원이 승리했다.


정도전의 사상은 왕권이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권한을 조정하는 위치를 넘을 수 없기 때문에 조선 왕조에 적용된다면 자연히 왕권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성혁명을 거쳐 새로운 왕조를 세운 태종 이방원은 그런 이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고려 왕조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로이 들어선 조선 왕조는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룩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은 곧 강력한 왕권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방원과 정도전, 문재인과 손학규는 근본적으로 국가체제를 어떻게 편제하고 운영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를 지향한 반면,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하는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표방했다. 


오늘날 문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의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성이 차지 않은 듯, 대통령 임기를 3년 더 연장할 수 있는 ‘4년 중임제’로 개헌해 황제 대통령을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반면 손학규는 다당제를 이루고, 나아가 분권형 개헌을 통해 협치시대를 완성하는 7공화국을 꿈꾸었던 것이다.


만일 문 대통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이 집권했고, 그래서 더욱 강력한 정권이 돼야 한다고 생각에서 ‘황제적 대통령제’라 불리는 ‘4년 연임제’를 기획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상과 현실의 갈등에서는 현실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결국 힘을 지닌 이방원이 이상만 지닌 정도전에게 승리했듯 문재인이 손학규를 눌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림들이 집권하게 되면서 정도전이 꿈꾸던 이상 세계가 구현되어 갔으니, 정도전의 꿈이 꿈에서 그친 것이 아니듯, 손학규의 7공화국 꿈도 그렇게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갈 것이라 믿는다. 그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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