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패착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11-01 11: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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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을 위해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이틀간 일정으로 '유책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당헌 개정 여부를 당원들에게 묻는 절차에 돌입했다. 당 지도부가 공천하기로 사실상 결정해놓고는 형식적으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척 한 셈이다.


이낙연 대표는 결과가 빤한 것에 대해 왜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밟는 것일까?


당헌 개정에 대한 책임을 당원들에게 떠넘기기 위한 술책이다.
지금 당헌 개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 유세 현장에서 한 발언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당시 문재인은 “이번 고성군 선거는 새누리당 전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되는 바람에 치러지게 된 선거입니다. 이 재선거 하는데 예산만 수십억 원 됩니다. 우리 고성군민들이 부담해야 할 돈입니다. 그랬으면 새누리당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책임집니까? 후보 내지 말아야죠”라며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여기 고성에서 무책임하게 또다시 후보를 내놓고 또 표를 찍어달라고 합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보다 훨씬 많은 수백억씩 들어가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뻔뻔하게도 자당 후보를 내려고 수작(酬酌)이다.


오죽하면 진중권 전 교수가 "민주당의 새 당헌 제1조: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이다."라고 꼬집었겠는가.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도 “공당의 도리는 공천할 권리가 아니라, 공천하지 않을 의무의 이행이 되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전형”이라고 날을 세웠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는 이낙연 대표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를 통해 "이 대표가 당헌 개정 전당원투표를 밝히면서 '특히 피해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피해자와 지원단체 등은 민주당으로부터 그 어떤 사과도 받은 일이 없다"며 "무엇에 대해 사과한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이런 상태라면, 설사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낸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에 따른 책임은 당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이낙연 대표의 몫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이번 선택은 명백한 패착(敗着)이다.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대권은커녕 당장 ‘책임론’에 휩싸여 대표직마저 내려놓고 정계 은퇴를 선언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당내 주류인 친문 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대권 주자를 내세울 것이 불 보듯 빤하다. 어쩌면 그들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귀책사유로 인해 승리하기 어려운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도록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이낙연 대표가 지도록 하는 밑그림을 그려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권 내에선 불법 여론조작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 지사가 이번에 무죄를 받는다면 잠재적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는 것을 기정사실 화하는 분위기다. 


친문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대표도 “일단 재판 결과를 봐야 한다”면서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지켜봐야 할 주자는 맞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 지사의 항소심 재판 결과는 내달 6일 나온다. 어쩌면 민주당이 부랴부랴 당헌 개정을 위한 전당원 투표에 나선 것은 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낙연 대표는 자신의 주변 그룹을 친문계 중진과 청와대 출신을 포함한 현역 의원 위주로 확대 재편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확신하고 있겠지만, 조만간 그 확신이 ‘물거품’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집권당 대표로서 ‘무공천’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탐해 당헌 개정을 강행한 대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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