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왕 경호원의 인사이동은?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19-09-22 12: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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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안병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본 칼럼은 조선국왕의 경호실인 선전관청(宣傳官廳)에 근무하는 선전관(宣傳官)의 인사이동절차를 고찰해봄으로써 현대사회의 대통령 경호실과의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전기 선전관에 대한 인사이동은 세조 4년 8월에 사헌부 집의(사헌부에 속한 종3품 벼슬로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했던 관직), 병조 정랑(병조에 속한 정5품 벼슬로 인사 행정을 담당했던 관직)을 선전관에 임명하였고, 세조 10년 10월엔 선전관 이평을 장용대장에 임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선전관에서 동반 6품직으로 발령될 경우 외직으로는 수령, 경직으로는 6조, 3사 및 그 밖의 소수 청요직을 제외하고는 각 아문의 주부 등의 관직으로 진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내승에 임명되기도 하였고, 선전관으로 당상관이 된 자도 있었으며, 선전관으로 임기가 만료된 자에게 수령을 제수하기도 하였는데, 중종실록에는 “선전관 출신을 수령에 임명하였는데 치민의 도를 알지 못 한다고 하였다.”

선전관에서 임기만료, 전직할 경우 동반직 6품직으로 진출한 것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중종실록에는 선전관에서 임기만료 후 바로 거제현령으로 발령하였는데, 6품직을 제수해야 하나 현령(종5품)으로 발령되었기에 사헌부에서 탄핵한 내용이 있고, 연산군일기에는 선전관은 임기만료 후 동반 6품직으로 임명되었음을 볼 수 있다.

선전관 출신이 6진의 부사가 된 경우도 있다. 또한 선전관을 지낸 자가 승정원 승지에 임명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서반승지로 불려 질 만큼 국왕의 측근에서 임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승지로 진출하는 경우 많았던 것이다.

아울러 변방의 장수를 선발할 때는 도총부, 훈련원, 선전관 출신 중에서 사족들로 추천하기도 했으며 참상의 선전관을 선발할 때는 6품의 실직 경력자로 하고, 남행선전관으로 임기가 만료된 자에 대하여는 문관으로 보내며, 6품관으로 승진시켰다.

조선 전기에는 문과출신자들을 선전관에 임명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변지의 관직, 방어사(종2품)를 거친 사람은 선전관을 거쳐 수군절도사(정3품)로 추천하며, 변지의 관직이나 방어사를 거치지 아니한 사람은 선전관을 거쳐 변지의 관직 또는 방어사에 임명하였다.

선전관은 승지(정3품), 방어사(종2품), 수군절도사(정3품) 등의 요직으로 이동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국왕의 절대적인 신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선전관에게 선전표신과 순패, 번패를 휴대하게 한 것으로 보아서 확인이 된다.

선전관의 신분이 무신으로 된 것은 중종 23년경이다. 그리고 선전관은 병종이 아니기 때문에 갑사를 가금할 수 있었으며, 또한 내금위, 겸사복 등의 금군을 출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선전관 입사자의 신분도 시대적 성격에 따라 변했던 것은 당연한 일로 무과출신자나 문과출신자를 중심으로 입사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문벌이 강화된 16세기 이후에는 문음 출신들이 대거 선전관으로 입사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선전관은 세조시기에 서반승지로 호칭되었고, 문관의 옥당, 전랑, 한림, 주서 등의 관직에 비유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문관은 한림 무관은 선전관이라 칭할 정도로 안정적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승지는 청요직 이라 불리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선전관은 실록에 자주 청요직이라 불려 진 것으로 보아 국왕의 측근에서 중요한 참모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조선국왕의 경호원인 선전관은 국왕 자신의 신변보호와 왕권의 신장 내지는 강화를 위한 하나의 조치였으며, 중앙집권제의 강화라는 정치적인 의도와 밀접한 관련 하에서 설치 운영되었던 제도 중 핵심을 이루는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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