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방패’ 아닌 ‘창’이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12-16 12: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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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헌정 사상 처음인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중징계 결정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사인성호(四人成虎)’라는 새로운 고사성어가 등장했다.


네 명만 작당하면 임기제 검찰총장도 얼마든지 죄를 뒤집어씌워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징계위원회가 아니라 중징계란 정해진 답을 위해 형식적으로 절차를 밟는 ‘징계 추진위원회’”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겠는가.


문재인 정부 초기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에게 정직 2개월 결정을 내린 법무부 징계위원들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팔아먹은 대한민국의 역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오늘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법무부 징계위원들 쇼하느라 고생 많았다"며 “만고에 더러운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 가문의 영광”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추미애가 싸질러 놓은 것 뒤치다꺼리 한 것뿐인데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 억울해하지 말라. 비열한 부역자의 운명이란 어차피 그런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앞세운 친위 쿠데타로 헌정을 파괴한 것”이라며 “죽창만 안 든 인민재판”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권력자의 자의성 앞에서는 헌법도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며 “원래는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대통령의 임무인데, 대통령이 나서서 헌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들의 비판이 조금도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야당 비토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안에 당론으로 찬성했던 범여권의 정의당마저 "징계 과정에서 이정화 검사의 감찰 보고서 누락, 법무부 징계위원 구성에 대한 정당성 시비 등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99%의 검사들이 추미애 장관의 행태에 항의 성명을 냈고, 전국의 법학 교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법원에선 윤 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직무배제 효력을 정지시켰고, 법무부 감찰위는 만장일치로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전국 법관회의는 판사사찰 문건에 관한 안건들을 부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에 대한 징계는 누가 봐도 억지다.


그러면 왜 문 대통령과 추미애 장관은 이처럼 상식에 어긋나는 무리수를 둔 것일까?


어쩌면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언장담하던 ‘20년 장기집권 플랜’을 가동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김종민 변호사도 윤석열 징계를 “20년 장기집권 플랜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마도 집권세력은 윤 총장이 ‘식물 총장’으로 있는 정직 2개월 동안에 공수처를 신속하게 출범시켜 검찰이 그동안 진행해 왔던 권력형 비리 수사를 더 진행할 수 없도록 막으려 할 것이다. 이미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을 앉힐 수 있도록 공수처법을 개정해 놓은 상태다.


더구나 공수처법은 검찰·경찰 등 기존의 수사기관에서 3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관련한 수사 필요성을 인지하게 됐을 때, 공수처에 즉각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보고된 사건들 가운데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할 때 수사기관은 공수처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대통령 측근을 수장으로 하는 공수처가 이첩된 사건들을 ‘미적미적’ 뭉개면서 정권의 호위무사 역할을 자임할 경우, 정권 비리 의혹은 그대로 묻힐 수도 있다.


실제로 공수처는 원전 조기폐쇄 경제성 조작 사건을 비롯해 지난 2018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라임·옵티머스 정·관계 로비 사건 등 현 정권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의 이첩을 요구할 것이고, 차기 대선에서 여당이 승리할 때까지 뭉개버릴 것이 불 보듯 빤하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지금의 민심은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30%대로 추락해 ‘조기 레임덕’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마당이다. 


경고하거니와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 공수처를 방패막이 삼아 정권 비리 의혹을 덮겠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면 공수처가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과 그 주변을 겨누는 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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