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가 아니라 ‘판갈이’가 필요하다

고하승 / 기사승인 : 2019-11-21 14: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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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대한민국 국민 두 명 가운데 한명 꼴로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현역 국회의원을 바꾸고 싶어 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매번 총선이 다가올 때마다 이처럼 '새 인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데 다음 총선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른바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물갈이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지난 15대 총선부터 ‘인적쇄신’이라는 명분 아래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돼 왔다. 


당시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민주자유당의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대규모의 물갈이를 추진했다. 이때 김문수.이재오 등 진보성향의 인사들과 함께 검사로 활약하던 홍준표가 영입됐다. 그레서 이들을 'YS 키즈'라고 부른다.


16대 총선 때에는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젊은피 수혈론'이라며 새천년민주당에 이인영, 임종인, 우상호 등 이른바 '86 운동권' 인사들을 대거영입 했다. 이른바 ‘DJ 키즈’인 셈이다.


19대 총선 당시에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뒤 이준석 씨를 당 비대위에 영입하는가 하면 손수조 씨를 문재인 대통령 대항마로 내세우는 등 '박근혜 키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키즈 정치인’들은 지금 대부분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하거나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용퇴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이준석 씨 같은 경우는 막말로 인해 바른미래당에서 징계를 받는 등 어린 나이 임에도 벌써 ‘구태정치인’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총선이 있을 때마다 전체 의원의 40~50%가량이 물갈이 되지만, 그로인해 정치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국회에 입성한 ‘키즈 정치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성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이거나 오히려 더 구태정치의 행보를 보이기 일쑤다. 그렇다면 이제는 임시방편으로 ‘물갈이’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처방을 위한 ‘판갈’이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


한마디로 패권세력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중심의 양당제 정치구조를 다당제로 아예 정치판을 싹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전향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연비제가 도입되고 그로 인해 다당제가 안착되면 제왕적대통령제의 병폐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가 선진 유럽처럼 안정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한국당은 선거제 개혁을 통한 ‘판갈이’보다는 ‘물갈이’라는 기존의 실패한 방법을 더욱 선호하고 있으니 문제다.


실제로 한국당은 현역 의원 30%를 ‘컷오프’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한다고 한다. 당무 감사 결과와 지지율 등을 고려해 현역을 대폭 물갈이 하겠다는 거다. 이는 하위평가 20%의 현역 의원에게 20%를 감산하는 공천룰을 정한 민주당보다도 더 파격적이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은 양당의 이런 물갈이에 냉소적이다. 지금과 같은 양당제 구조에서는 사람 몇 명 갈아치운다고 해도 국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과 한국당은 다당제로 정치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지금 패스트트랙에 태운 선거제도 개혁논의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민주당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100% 연동형이 아닌 50% 연동형이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것은 연비제 도입이 못마땅한 민주당의 속내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현행 ‘승자독식’의 잘못된 제도에서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덜 내려놓겠다는 심보다. 


한국당의 태도는 더더욱 잘못됐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단식을 진행하면서 내세운 명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선거법개혁안 저지’라고 하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손학규 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 가까스로 성사시킨 절반의 ‘개혁’을 단식으로 저지하겠다니 ‘몽니 단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낡은 양당제 체제에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조금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욕심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각 언론이 황 대표의 단식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건 그것이 잘못된 단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물갈이로는 한계가 있다. 사람 몇 명을 바꾼다고 해서 국회의 질이 달라지지는 것은 아니다. 판갈이로 아예 정치판을 뒤엎지 않으면, 설사 21대 국회에서 ‘황교안 키즈’, ‘이해찬 키즈’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진정 정치발전을 바란다면 ‘물갈이’에 쏟는 현재의 노력을 ‘판갈이’에 쏟아주기 바란다. 연비제 도입에 양당이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달라는 것이다. 판갈이를 위해서라면 국회의원 세비와 특권을 대폭 줄이고 의원정수를 10%가량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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