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한국전 중에도 선거를 했던 나라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2-25 14: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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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민주주의의 선진국 영국에서도 1754년에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당시 인구 약800만 명의 3.5%인 28만 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물론 귀족들이었다. 차츰 선거권이 확대되어 갔다. 1884년에 가면 세금을 내는 모든 家口主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1918년엔 세금을 내는가의 與否와 관계 없이 모든 成人 남자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여자들에 대한 보통 선거권은 1928년에 주어졌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 된 민주주의 국가인 프랑스에서도 1790년 일정규모의 재산을 가진 납세자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1815년엔 30세 이상의 年300프랑 이상 납세자가 투표권을 가졌다. 1820년엔 일정 재산 이상을 가진 유권자는 1인 두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830년엔 25세 이상의 200프랑 이상 납세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 인구는 전체 成人의 170분의 1이었다. 1848년 모든 남자 성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가 2년 뒤 3년 이상 거주 납세자로 제한되었다. 1851년에 다시 남자 보통선거권으로 돌아갔다. 1945년에 모든 여성 성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거권 확대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폭이 확대되는 과정이란 사실이다. 동시에 선거권 확대는 점진적이었고 신분중심(봉건체제)-납세중심(부르조아 체제)-남여 모두(대중 민주주의 시대)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수백년에 걸친 점진적인 과정을 생략하고 1948년 헌법 제정과 동시에 보통선거를 하게 되었다. 재벌 총수도 한 표, 직원도 한 표이다. 무직자도 한 표, 교수도 한 표이다. 세금을 수백억원 내는 사람도 한 표, 안내는 사람도 한 표이다. 선거권의 점진적 확대 과정은 투쟁의 과정이고 민주주의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 결과물인 男女 불문한 1인1표제를 도입한 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민주주의 제도에 무임승차한 셈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유럽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의 苦鬪를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진 셈이다.

1948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서양에서 수백년 걸려(영국의 경우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제정부터 시작하면 보통선거 쟁취까지 약700년이 걸렸다) 발전시킨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연극, 민주주의란 연습을 해온 셈이다. 연극과 연습을 많이 하면 實演이 되긴 하지만 외래 제도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엄청난 代價를 치러야 한다. 西歐의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하여 李承晩과 朴正熙를 독재자라고만 단정하는 것은, 메이저 리그의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동네 야구 선수들을 혹평하는 것과 같다. 세종대왕에게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욕설을 퍼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48년 5월10일 총선은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선거였다. 좌익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90%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여, 국회의원을 뽑고 이들이 국회를 구성한 뒤 헌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따라 이승만 정부가 구성되었다. 일련의 建國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5월10일이다. 국민들이 주권자임을 선언한 날이다. 자유로운 선거로써 국회, 헌법, 정부가 구성되었다는 점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보증한다. 유엔 총회도 이 점을 높이 평가,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였다. 북한은 지금까지 자유로운 선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정통성이 없는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들이 한 표를 행사한 날, 5월10일을 국가 기념일로 정하고 교과서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할 이유이다. 한국에서 자유선거가 가능하게 된 데는 유럽에서 수많은 애국자와 독재자가 피를 흘린 덕분이란 점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총선 연기론이 나온다. 한국은 1952년 전쟁중에도 선거를 했던 나라이다. 그때 민주주의 나이는 네 살이었다. 선거연기론은 국헌문란적 發想이다.

 

출처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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