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고속도로 달리는 사나이! 김만연 편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3-10 14: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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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나이!  

누구나 고속으로 달리는 고속도로의  휴게소 '덕평'에서 그를 만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협동조합 ''하이샆'' 이사장 김만연.

그는 고속으로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그는뜀박질을 할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하늘이 노랗게 보일때까지 미친듯이
달렸다. 죽을것 같은 그 순간,순간이 오히려 행복했다. 외로움 때문이다.

죽을것같은 그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그의 앞엔 아무도 없었다.그런 이유로 그는 늘 일등 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 선수였다. 스파이크 하나 없이 맨발로  논바닥을 뛰고 시합날만 까만 운동화를 신고 달릴 수 있었다.

100m, 200m, 400m, 높이뛰기, 넓이뛰기, 전국체전에서 육상으로 우승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핸드볼선수가 되기도 했고, 배구선수가 되기도 했다가 결국은 고등학교에 축구선수로 스카웃 됐다.

''달리기는 삶 자체 였습니다. 서자로 태어나 아무데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 받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탈출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달렸지요. 죽을 각오로 달리면 내 눈앞에 아무도 안 보이거든요. 마치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인듯 트랙만이 보였습니다.''


흙먼지 펄펄 날리는 비포장 신작로를 전봇대 숫자로 가늠하며 100m씩 이어 달리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그의 달리는 본능은 육상선수의 그것이 아니었다.


''늘 서자로 태어난 저를 바라보는 어머니를 생각했지요. 어머니의 가슴에 맺힌 외로움, 서러움을 덜어낼 수 있다면 달리다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 했어요. 강원도 산골인 양구에서 내 능력으로 어머니를 웃게하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이었으니까요.''

양구종고에 육상선수로 스카웃된 그는 축구선수로 춘천공고에 다시 스카웃되고 강릉농고, 강릉상고를 거쳐 울산 학성고등학교를 졸업했을때, 그는 고등학교 6학년을 다녀버린 입영대상자가 되었다.

고려대학에 입학하고자 6년이나 정진했던 그의 공든탑이 무너지고 입대를 한 후에 그는 조광래, 박창선, 박성화등과 함께 육군대표인 상무팀의 주축이 된다.


그 곳에서 100m를 10초 9에 뛰던 그의 스피드가 상무팀의 화이팅을 주도 할 수 있었다. (84년, 올림픽 기록을 가진 Ben Johnson의 올림픽 기록이 (카나다) 10초 2 였다)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세상을 살아낸 그는 스피드광인 상무 축구단장 윤태균장군에게 인상적인 선수로 각인 되었고 후일 도로공사에 취임한 윤태균 사장은 그를 잊지않고 도로공사 시설관리공단에 그를 투입했다.

새벽에, 밤늦게 혼자 연습하던 모습을 지켜봤던 윤태균 사장이 그를 기억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한전축구팀과 대우전자 육상팀을 맡았던 그에게 특유의 성실, 투명함을 믿고 언양휴게소를 맏겼다. 그 이후로 대관령휴게소 관리과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만 3년여 동안 김만연은 운동할때와 동일한 속도와 리듬으로 휴게소를 관리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달릴려면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박자 빠르게 생각하고 한발짝 더 내딛어야 남들보다 빠르게 뛰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운동도 경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 합니다.''


남들 평생 다니는 직장을 3년만에 퇴사한 이유는 뭘까?

''뛰면서 생각한다!'가 습관인데 3년동안 운동하듯이 열심히 뛰면서 생각해 봤더니 역시 선수는 필드를 직접 뛰어야 사는 맛이 있더라구요. 월급쟁이로 살아 보니까 세상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지루하고 점점 나태해져서 재미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후에 그가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을까?


''재미요? 정말 눈물 납니다! 처음엔 다 좋아 했지요. 다들 신나게 돈을  벌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눈물이 났을까?

고속도로 전용시설외 공간에 불법점유물인 노점차량을 세워놓고 장사를 했으니 말도많고 탈도 많은게 당연했다.


휴게소관리를 했던 경력으로 자연스레 노점상들의 대표가되어 도로공사와의 이해관계 조율을 해나가던중 느닷없이 폭력조직 '고속파' 두목으로 몰려 수갑을 차게되고 3년여의 실형을 살았다.

검찰은 그를 흉악범죄단체 '고속파'의 두목 김만연으로 입건하고 휴게소를 중심으로 조직폭력단체를 구성 해서 조직원들을 노점상으로 투입시키고 금전 갈취를 한 범죄자로 기소하고 실형을 구형했다. 판사의 3년 실형이 인생의 방향타를 바꿨다.

''아내도 떠나고 친구도 떠났지만 세상의 맨얼굴을 바라보며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되었지요. 휴게소안의 문제등으로 구속되어 있는 동료들의 변호사비를 도와주자해서 모은 돈을 내가 걷어 전달 했는데 그게 갈취로 둔갑하고 노점상 친목모임이 '폭력조직' 으로 둔갑 한겁니다. 결국 휴게소내의 이권을 독점하기위해  내가 제거대상 이었는데 저만 모른거지요.''

세상은 축구장과 달라서 소명을 가진 '주심,선심'이 존재하지 않는건 물론 '프리킥, 페널티킥' 이따위 것들도 아예 없다는걸 처음 알게된 김만연은 억울하다고 '악써서' 해결될 일이 하나도 없다는걸 깨닫고 그야말로 '슬기로운 감빵생활' 모드로 정진했다.

운동만 해왔던 그에게 공부를 할 시간이 처음 주어진듯 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기필코 무죄판결을 받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후에 감격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분신같은 가죽가방을 열고 낡은 서류들을 꺼냈다. 


''자 이게 무죄판결을 알리는 판결문 입니다. 저는 비겁한 짓 하지 않습니다. 나는 스포츠 맨 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 노점상들 중에 유일하게 도로공사 직원이었습니다. 공무원이 조폭조직을 만들다니요. 어찌됐든 두번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내 손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일이  자랑스럽습니다.''


죄도없이 형을 산건 억울 했지만 그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참으로 영양가가 있었다. 첫번째로 이순신의 명량대첩같은 무죄판결을 이끌어 냈고 두번째는 감방에서 생각해낸오징어 맥반석구이다.


오징어 맥반석구이로 '대박사건' 을 만들어 이십년 넘게 휴게소 베스트셀러로  지켰으니 만만잖은  자산을 확보하는 기회가 됐다.

''그 덕에 아들두 놈 브라질에 축구유학 보냈지요. 운동도 중요 하고 공부도 중요 한 걸 알았어요.''


이제 휴게소 영업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도로공사와 공식 파트너가 된 '하이샆'의 선출직 회장이 된 김만연은 오늘도 전국 200여개의 고속도로 휴게실을 휘돌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고객의 동선을 살핀다.

''궁금하지요. 화장실에서 나오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방향이 가장 중요 하지요''


오직,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이 생존비법 이라고 믿었던 달리는 사나이 김만연이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 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어찌 얻었을까?

혹시 이것도 '슬기로운 감빵생활'  탓일까? 

오직 최고의 속도로만 달려온 사나이 하이샾 이사장 김만연이 고속으로 달려온 사람들에게 오늘은 평화로운 휴식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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