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칼잡이 박정일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2-24 14: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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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피 묻히고 사는 사람!

박정일. 그는 조폭이 아니고 군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도살장에 근무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가 속칭 칼잡이 인건 맞지만 그의 직장은 병원이다.


신사역에 자리잡은 '네오 성형외과의원'이 그의 직장이다. 

소위 미래를 본다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피냄새를 맡는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이 보자마자 '손에 피 묻히고 사는 팔자'라고 한 눈에 알아보니 천직인 거 겠지요. 원래 제 주특기가 칼 잘쓰고 바느질 하는거 거든요"

중학교 때까지 친구들의 찢어진 책가방, 운동화, 교복 등을 수선해주던 재주가 있었던 그에게 "아예 고등학교 시험보지말고 수선점을 동업하자!"는 친구도 있을 정도였다. 

공부도 지겨운데 그래 버릴까 생각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옆동네 신격호 집안을 생각해라! 돈 버는데 1등 집안 신씨네, 머리좋은 일등집안
박씨네, 절대로 잊으면 안된데이"라고 말씀하시는 동네 어른들의 강압적 응원을 떠올리곤 했다.(물론 그 당시에는 신격호씨가 일본가서 '돈 잘번다'였지 지금처럼 큰 재벌이 되리라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박씨네 하버드 훼미리가 되다! 

''그후에 대체적으로 어머니의 그 뜻이 이루어 졌습니다. 육사 간 둘째형도 서울대를 다시 나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서울대 출신이고, 큰 형은 미국에서 천재로 인정받아 일등기업 '다우케미컬'의 수석 연구원이 됐고 두아들은 하버드를 졸업했습니다. 게다가 하버드 출신의 며느리 둘을 합쳐 명실공히 '하버드 훼미리'가 됐으니까요, 둘째형은 육사, 서울대를 졸업하고 당시 잘나가던 '하나회'를 제쳐가며 장군이 됐고. 저도 어머니의 뜻대로 의사가 됐으니까요.''


어쨌든, 옆 마을 출신 돈잘버는 '신씨네'에 걸맞게 천재집안 '박씨네' 도 나름 진영을 갖춘 셈이다. 
 

'존스 홉킨즈'가  아니라 미안해요! 

"어머니 계획에 크게 빗나감이 없지만 내가 "존스 홉킨스" 의사가 아니라 부산대 나와서 백병원 의사가 된게 나름 아쉬움이었지요." 


의사 된 지 34년, 그 아쉬움을 메꾸기 위해 그는 참으로 목숨걸고 의사로 살아냈다. 

수퍼맨이 되다! 

그 당시 '전설의 칼잡이'로 명성을 날리던 백병원 성형외과 백세민 교수의 '치프'로 더구나 남들이 일년하는 '눈물의 치프'를 3년 동안 했다는 건 거의 '곰이 쑥을 먹고 사람이 됐다'는 정도로 의료계의 신화가 됐다.

서른여섯살에 미국에서 '서전 오브 이어'라는 외과의사 최고의 상을 받은 그가 한국의 백병원에 뿌리를 내린건 정말 '강림' 수준이었다. 


또한 그의 명성에 걸맞게 '괴팍의 도'를 가늠할 수 없는 그의 곁에서 일년이 아닌 3년 동안 치프를 거친 박정일 또한 '수퍼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모두합쳐 열시간도 채 못잔 상태서 응급실 콜 받으면 아무말 묻지않고 본능적으로 달려나가는 '콜번개' 로 사는 동안 '번개 1호'라는 별명을 얻고 '숨은그림찾기', '조각그림 찾기'의 달인이 됐다.(대형사고 현장에서 실려온 환자의 환부는 원형을 예측하기 어려워 뛰어난
상상력과 고도의관찰력이 요구된다)

초인적인 인내는 기본이고 보도블럭이나 전봇대 빼고는 뭐든지 삼킬 수 있는 비윗살, 철인 28호 보다 강력한 체력이 요구되던 그 시절, 박정일은 어느금요일에 인쇄절단기에 두번 절단된 환자의 손가락 스무조각을 잇기 시작해 2박 3일 수술을 하고 나서 갑자기 마라톤이 하고 싶어졌다.


물론, 그때 시작한 마라톤이 이제는 '철인 3종경기'라는 습관으로 고정화 되었다.  

의사 된 지 13년만에 개원을 시작해 현재까지 의사로 30여년을 사는동안 늘은 것이 참 많았다.  
"식구도 늘고, 팽팽하던 얼굴도 지구중력과의 싸움에 늘어졌고, 배도 늘었고, 마라톤도 늘었고, 수영 실력도 늘고 자전거 실력도 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늘은 건 '궁예' 수준의 관심법과 중국어 실력이다. '딱보면 아는 관심법'은 현상이 아니라 마음의 흐름을 읽는 기술이다.

"쌍거플 수술을 왜 하는지? 안면거상을 해서 누구를 턱들고 내려다보고 싶은지? 코를 바짝 세워서 누구코를 납짝하게 누르고 싶은지? 여자를 읽는 실력이 많이 늘었지요"

게다가 고대사 공부를 위해 한국송통신대에 입학해 배웠던 중국어는 중국 '닝샤성 제1인민병원'의 객좌교수로 활동할 정도로 늘었다. 

"고대사 공부를 하려고 한문을 배우다 중국역사와 언어공부를 하게 됐는데 성형바람이 부는 바람에 역사가 아니라 중국에 성형을 가르치게 됐네요.세상 참 뜻대로 안되요"

가르치기보다는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형외과 의사 박정일은 역사공부와 바둑, 마라톤, 수영,그리고 스쿠바, 등산, 야생화촬영, 테니스를 거쳐 이제는 철인3종경기에 빠져들고 있다.

"의사로서 집중 하지만 그 집중을 위한 여러가지 스킬이 필요하다고 봐요. 상상력이 배가되는 일, 관찰력을 훈련할 수 있는 놀이, 창의력과 순발력을 상승 시킬 수 있는 습관과 철인같은 인내, 체력을 제고할 수 있는 운동능력등이 완벽한 의사로서 나를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의사는 '수퍼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퍼맨'이 되어야 환자들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되어야 환자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지요. 얄팍한 지식으로 절박한 환자의 하소연을 막는 일은 의사가 할일이 아니지요. 올림픽 도로 공사장에서 발등부터 짓이겨지고 발가락이 떨어진 상태서 들이닥친 환자의 복원수술을 열두시간만에 끝냈을때, '수퍼맨'이 된 보람을 느꼈지요. 나중에 그 환자가 불시에 찾아와 악수할 때 얼마나 눈물 나는지 아십니까?"

그가 칠남매 중 유일하게 에리트 수준을 유지못한 열등감을 해소할 때가 바로 이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에만 서울대 컴플렉스를 잊고 '수퍼맨'이 된다.


"진짜가? 니가 다 살맀나?" 

형제들 모임에 막내로 참여해 티안나는 심부름만 하던 어느날, 심각하게 늦은 지각을 하고 긴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제가요. 게으름 피운 게 아이고, 수술방에 들어가 열두시간 수술을 했그등요, 우쨌든 열 손가락 싹 다 살리가 꿰메고 오느라 이래 됐 뿐는데 우짜지요!"

그 말이 떨어지자 이구동성으로 

 

"진짜가? 네가 다 살맀나?" 물음이 이어졌고 "다 살리놓고 왔심더!"라는 말에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며 "막내가 부모님 마지막 정기를 다 안고 나온 게 확실 한기라!"

그날에야 비로소 그 열등감의 터널에서 온전히 탈출한 박정일은 칠남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지독한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상도 산골마을에서, 롯데신격호의 집안 신씨네와 세를 겨루던 박씨집안 형들과 누이들의 천재성에 눌려 지내던 박정일이 단숨에 비상하는 감동의 순간을 처음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내가 웬만한 건 다 잘 했논데, 수석을 해도 장학금을 타도 아무도 안 알아주는 거예요. 일등할 맛 안나지요. 헌데, 열두시간 동안 손가락 다 살리고 왔다니까 거의 '명량대첩' 분위기 였거든요."


그는 이제 칠남매 다 모여도 병원에서처럼 여전히 "수퍼맨"이다. 그러나 완벽한 '수퍼맨'을 당황케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보통은 산부인과에서 하는 '이쁜이수술' 을 간절히 요구해서 어쨌든 환자가 원하는 대로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자세한 설명이 곤란하지만, 이뻐지고자 했던 부위가 달랐던 것, 결국 재수술을 해주었다)수퍼맨도 여자는 잘 모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스물세살 전지현처럼 생긴 여학생이 "내코를 '아그리파'처럼 세워야겠다"고 우길 때 "그러면 전지현 아니고 장동건처럼 보일수도 있다"며 말리고 말리다 "절대로 여기서 안했다"고 말하기로 하고 결국했다.

또 스물두살된 김태희 닮은 여학생이 기필코 안면거상 수술을 하겠다고 통사정 할 때(보통은 40대 이상이 하는 수술인데 3년을 거부하다가 스물다섯에 결국 했다. 아마도 최연소 거상수술 일거다. 비밀인데...)

이런 허당 수퍼맨 박정일이 후배들에게  무협지에 나올듯한 대사를 수시로 설파한다. 

'저자거리에서 녹슨칼을 휘두르는 자 중에 무사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심신을 갈고 닦아서 늙은 농부의 호미자루 처럼 남루해 보이지만, 닳고 닳아 손자욱이 빛나는 칼집으로 위엄을 보여야 된다고 믿는 진짜 고수다.


'정육점 주인의 칼과 네가 쥔 칼의 무게를 알라! 그래야 은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고수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무협지 대사보다 날카롭다.


"훌륭한 칼잡이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수련해서 자신의 내공을 갖추어야 합니다. 짧은 칼만 잘 쓰는 검객은 모든 적을 그 칼로 해치우려 하고 긴 창을 잘 쓰는 무사는 그창 만으로 모든 승부를 보려하니 승부가 어렵습니다. 그 승부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니 심각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내가 하고 싶은 수술, 내가 할 줄 아는 수술이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수술을 할 수 있어야 진짜의사가 되는겁니다"

원래 '위대한 칠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미켈란젤로'처럼 살고 싶었던 수퍼맨 박정일'은 "이 별에선 의사가 됐으니 이제 환자에게 희망의 존재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며 힘차게 수퍼맨 포즈를 취한다.


그래도 철인3종경기 연습을 위해  장비를 챙기는 그의 히끗한 귀밑머리가 참 멋지다! 

굿럭! 수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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