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線에 가 보았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3-31 15: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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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가 바그다드로 진격하고 있을 때 尙美會여행단은 프랑스에 있었다. 로렌 公國의 수도였던 낭시를 떠난 우리(버스)는 알자스 지방으로 넘어가 스트라스부르를 구경한 뒤 쉔넨부르그의 마지노 요새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 휴전선 풍경을 연상시켰다. 야트막한 구릉과 숲이 이어지고 人家나 도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형적인 戰線 분위기였다.


쉔넨부르그 요새에 도착하니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요새는 알자스 지방의 재향군인회에서 인수하여 관광명소로 운영하고 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관광객이 없었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인으로선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면서 토치카 입구를 지나 군함 내부의 좁은 철계단 같은 시멘트 계단을 따라 지하 30m로 내려갔다. 이 요새內에는 트럭이 다닐 만한 터널이 약 3km 뻗어 있다. 레일이 있는데 군인들은 타지 않고 주로 무기와 장비를 날랐다고 한다. 내가 안내자에게 『꼭 군함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잠수함의 구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 개념이 잡혔다. 이 요새는 地上과 단절된 地中 잠수함인 것이다.


입구의 두꺼운 쇠문을 닫고, 사발을 엎은 듯 지상에 노출된 砲塔(포탑) 뚜껑마저 내려 버리면 외부와 차단되고 철옹성이 된다. 계산상으로는 어떤 공습과 포격으로부터도 안전하다. 이 地中艦(Subgrounder-이는 필자의 작명) 안에는 병원, 부엌, 무기창고, 식량창고 등이 완비되어 있어 포위된 상태에서도 몇 달을 견딜 수 있다. 접근하는 적의 보병에게 수류탄을 던질 때 열 창이 없으니 수류탄 발사기를 설치했다. 안에서 기계에 수류탄을 넣으면 바깥으로 날아가는 설계였다.

2차 세계대전 때도 이 요새는 독일군의 포격과 폭격을 수천 발 받았으나 꿈쩍 않고 견뎌 내었다. 수비군이, 파리의 중앙정부가 항복한 다음에야 항복하라는 지시를 받고 손을 들었다는, 난공불락이 증명된 요새였다.


안내자는 우리를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설명했다. 잠수함처럼 換氣가 문제였다.


적이 독가스를 썼을 때의 대책에 신경을 쓴 장치들이 많았다. 부엌엔 당시로선 최신인 전기 오븐 장치가 되어 있었다. 이곳에 근무한 병력은 약 700명. 이 사람들은 地上으로 올라갈 일이 없어 잠수함 승무원들처럼 폐쇄공간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고 한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포도주에다 안정제를 타 먹이기도 했다.


포탑은 잠망경처럼 地下에 숨겨두었다가 발사할 때 안의 기계를 돌려 地上 50센티까지 올려 쏜 뒤 다시 내리는 식이었다. 평상시엔 포탑의 뚜껑만, 엎어놓은 사발처럼 지상에 노출된다. 이 뚜껑의 철판 두께는 30cm를 넘어 직격탄을 맞아도 부서지지 않았다고 한다.


안내자의 할아버지는 이 요새 건설에 참여했고, 아버지는 마지노 요새에 근무하였으며 자신의 아들은 전기 기술자로서 함께 이 요새를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발전기 등 주요 시설들이 아직도 가동중이었다. 프랑스가 가진 토목기술, 기계기술, 무기기술을 다 때려넣은 것이 마지노 요새 공사였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문제는 이 마지노선 건설이 守勢的(수세적) 발상이란 점이었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소모적인 참호전, 그 연장선상에서 어떻게 하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어시설을 갖출 것인가 고민하다가 이런 지하 요새를 만들었다.


독일군은 참호전을 電擊戰으로 극복하는 전술을 발전시켰다. 독일은 공세적인, 프랑스는 수세적인 대책을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1940년 5~6월의 獨佛 결전은 공세적 히틀러 군대의 승리로 끝났다.


쉔넨부르그(프랑스 알자스)의 마지노 요새를 구경하고 독일의 바덴바덴으로 가는 車中에서 나는 마이크를 잡고 강연을 했다. 프랑스 포도주 産地는 유명한 전쟁터와 겹쳐진다. 백년전쟁(부르고뉴), 종교전쟁-나폴레옹 전쟁-普佛전쟁-1차 세계대전-2차 세계대전(샴파뉴-알자스-로렌 지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가 남은 것이 아니라 神과 인간의 합작품인 성당과 포도주와 문화와 예술이 남아 있다. 이것은 평화 때문이 아니라 전쟁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비참한 것이고 피해야 할 일이지만 일단 그 연옥을 통과한 생존자들(국가들)에게는 큰 변화를 준다. 인간이든 국가이든 전쟁을 겪으면 강인해지고 성숙해지며 깊어진다. 죽임과 죽음과 대면해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國力을 총동원한다.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人的 자원, 경제 자원, 과학 기술력이 조직되고 동원되며 쓰여진다. 국가의 능력이 최고조로 고양된다. 허울과 허위와 위선은 전쟁이란 현실 앞에서 힘을 잃는다. 전쟁은 인간을 실용적으로 만든다. 헛소리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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