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사유(思惟)의 지평 확장을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9-17 15: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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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외교가의 거두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른 곳이 될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장벽의 시대’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우려했고,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Our New Historical Divide : B.C. and A.C.’에서 “세계는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와 이전(BC: Before Corona)으로 나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파이낸셜 타임즈(FT)에 기고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The world after coronavirus)'에서 “현재 일어나는 변화들, 비상 대책들이 우리 삶에 고착화되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말했고,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방역활동이 우리의 일상이다”라는 발언이 화제가 됐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코로나19의 파급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고 충격적이며 돌이킬 수 없이 도도히 흐르는 시대적 조류(潮流)라는 함의(含意)는 같은 맥락이다. 인공지능(AI) 시대와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실제로 우리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의 대변혁을 재촉하고 있다. 접촉과 연대의 전통적 대면의 ‘컨택트(contact)’는 종언을 선언할 겨를조차 없이 역사 속으로 묻혀버리고, 단절과 고립의 새로운 비대면 삶의 방식인 ‘언택트(untact)’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실 언택트(untact)는 코로나19 창궐 이전인 2017년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를 집필할 때 그의 연구실에서 탄생한 신조어이다. 다만,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작가의 ‘언컨택트’에서 불을 지피었고, 코로나19로 그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글로벌 초연결을 강조했고, 4차 산업혁명과 첨단 정보통신(IT), 도시화, 세계화만 이루면 더 편리하고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줄 알았고 우리의 욕망은 그곳에 매몰되었고, 우리의 가치는 그것만 지지했다.

그러나, ‘느슨한 연대’와 ‘나 홀로 주의’는 비루하고 진부한 자연적 인간관계에서 누적된 피로감이 가중되고, 일터에서 본의 아니게 연결된 형식적 인간관계의 부담감에 지치고 시달린 결과 불편한 소통에서 편안한 단절로 변화되어 인간관계의 리셋(reset)이 이루어지고,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의식하거나 고려가 전혀 배제된 채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동시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니즈가 보편화되고, 자신의 취향이나 가치관을 중심으로 나 홀로 활동 욕망이 강하게 분출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코로나19를 빌어 빠르게 비대면 언택트(untact) 방식으로 바뀌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서 있다. 무엇보다도 테크놀로지(technology) 시대로 접어들어서도 소통과 공감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더 강조했던 우리다. 그렇다면 언택트(untact) 시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처방은 더욱 강력한 단절의 고립인지? 아니면 보다 깊은 소통의 확장인지? 우리는 심각한 고민과 갈등에 빠져든다.

우리는 지금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감염병 퇴치를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수도권에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방역도 경제도 모두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상황인식으로 재난으로 ‘재난 유토피아’로 거듭나는 희망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일상을 포기한다.'는 절체절명의 각오로 ‘생활 방역’ 실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제 방역수칙 준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의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이기주의는 누구도 아닌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각별 명심해야 한다.

‘잠시 멈춤’은 가장 소극적인 대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장 적극적인 대응이다. 네오 노마드(neo nomad)의 트랜스 휴먼(trans human)으로 검색에 밀려 사색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안에 침잠해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시간의 여유와 공간의 여백을 늘리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엄밀하게 말해 언택트(untact)는 소통하지 않는 디컨텍트(decontact)가 아니라 소통의 방식을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꿔 접촉은 줄이고 접속은 늘리는 것으로 타인과의 거리를 넓히는 대신 나 자신과의 거리는 좁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채움의 욕망을 내려놓고 비움의 미학으로 연결되는 타인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보다 면밀한 잣대로 선별하여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딥택트(deeptact)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편하거나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고 자신과 취향이나 코드가 잘 맞는 사람들과의 컨택포인트(contact point)를 늘리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이 어수선한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우리 자신을 다독이고 어루만지며 스스로에 대한 딥택트(deeptact), 윤문(潤文) 조탁(彫琢)의 시간으로 승화시켜 갇힌 칸막이 속 깊은 단절과 무관심과 고독과 소외가 아닌 고갈되지 않는 신선한 열정과 설렘이 있는 꿈과 희망으로 결코 갇힘이 없는 소통, 관계, 나눔, 화해의 내적 동력을 키워 단절 깊은 영혼의 고립으로부터 미래지향적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고 폐쇄된 외연을 넓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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