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외로운 별에서 온 사람 박상훈 <한국노래강사협회장>편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19-12-05 17: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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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에 헤어지고 싶어 헤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떨어졌다'는 말에 '무슨 사연이?'라는 물음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성질 있는 부산사람 말투로 말을 막는다.

성깔 있는 남자다. 박상훈! 
그의 공식 직함은 사단법인 <한국가요강사협회> 회장이다.

‘스테파노’는 그의 유아 영세 때 받은 세례명이다.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견진성사를 받은 그는 태생적으로 가톨릭 신자다.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 돈암동 성당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골목에서 아이들과 말타기를 하며 놀지 않고 어른들과 함께 성당에서 지내기를 즐겼다.

일단 성당에선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성모마리아는 소박하게 자애로웠다. ‘수제비’만 피해도 든든한 은혜였다.

자연스레 ‘복사’가 되었고 ‘복사 단장’이 되면서 가톨릭에 깊이 동화되고 신부가 되기 위해 소신 학교에 입학했다.


성모님의 은혜다! 수제비를 안 먹어도 되고 추위에 떨지 않고 잘 수 있는 침대가 주어졌다.

이런 일상들이 그에겐 홍해가 갈라진 것보다 더욱더 감동적인 기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본 신문광고 때문에 그는 성모마리아의 품을 박차고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거기엔 성모마리아가 약속한 평온과 평화는 없었지만 예측불가의 환상적인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찢어진 신문지 하단에 있는 ‘안양예고’ 학생모집 광고를 보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요. 그 날밤에 제 인생이 바뀐 겁니다.”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잘라 말하는 그의  눈빛이 회상 씬을 돌리는 영화처럼 흑백화면으로 잠시 치환된다.

강호의 고수들이 총집결한 ‘안양예고’에서 그는 그야말로 녹슨 칼을 휘두르는 철없는 무사처럼,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상처의 딱지처럼 엉켜있는 삶의 흔적들을 아프게 지워냈다.

“그때 비로소 보통 아이가 된 거지요. 스타의 꿈을 꾸는...”
“졸업식 때 선생님 말씀이 섬찟했지요.”

“‘오늘부터 거울을 뚫어지게 지켜보라. 그 거울 속에 스타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길은 포기해야 한다. 스타가 되든가 성실한 민간인으로 살던가, 이제 진실로 자신을 마주할 때가 왔다!’. 참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는 거울 속에서 분명히 ‘태양은 가득히’의 영화장면들을 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자신과 ‘알랭들롱’의 깊은 바다같은 눈빛이 나를을 일으켜 세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MBC 청소년 드라마 '제3교실'에 출연하면서 배우 이덕화, 임예진과 조우한 것을 ‘지금도 가슴 뛰게 하는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가 명동예술극장에 올려진 극단 '맥토'의 ‘메시아’ 무대에 섰을 때, 그 순간이야말로 배우로서 가장 빛나는 명예로운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 후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 ‘13세 소년 이순신’ 촬영을 마쳤으나 1978년, MBC 탤런트 7기 시험 최종심에서 탈락하자마자 즉시 배우로서의 삶을 정리했다.

“그 시험 최종까지 갔다가 떨어지니까 세상 사람들이 ‘너 배우 자격이 없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서 그날로 배우 박상훈의 삶을 접었습니다.”

배우 박상훈의 삶이 끝나고 그날부터 가수이자 작곡가 박상훈의 삶이 시작됐다.

성음제작소에서 출반한 그의 첫 음반 ‘이 좋은 세상’은 그에게 마치 엘비스의 등장처럼 ‘화려한 외출’을 선사했다.  

180cm를 육박하는 키에 통기타를 메고 무대를 휘저으며아홉 개의 무대를 돌고 나오면 명동의 밤은 그의 점령지가 되었다.

여세를 몰아 아세아레코드 전속 작곡가로 스카우트된 박상훈은 윤중호의 ‘추억’으로 작사작곡자 통합 5위를 차지하고, 이은하가 부른 드라마 ‘성난 눈동자’ 주제가와 채은옥이 부른 ‘달무리’의 주제가로 가요계의 탄탄대로를 관통했다.

작사,작곡가로 가요계를 종횡무진하던 1989년, 자신이 시대의 상투를 쥐지 못하고 뒷전으로 내몰리는 듯한 박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상훈 콘서트’를 열며 가수로 컴백하고 1990년, 내친김에 ‘징코리아 레코드’라는 제작사와 녹음실을 설립했다.

‘징코리아 레코드’는 ‘꽃을 든 남자’ 등의 히트곡을 냈지만 계절이 바뀌면 꽃이 지는 법. 음반의 세상이 거하고 음원의 세상이 도래하니 천하의 박상훈도 이제는 ‘품위 있는 뒷전’으로 살아야 할 때가 됐다.

신부의 꿈을 꾸다가, 배우로 살다가, 히트가수로, 작곡가로, 제작자로 살아보고 이제는 사단법인의 가요 강사 협회장이 되었는데...

“우하하! 시절에 따라야지요.”


맹수의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 그의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오는지  사람들은 몹시 궁금해한다.

외로움이다!  그의 깊은 가슴속에 고여있는 외로움을 태워 혜성처럼 솟구치는 포효다.

그의 파란색불꽃 같은 에너지로 지금 꿈꾸는 건 두 가지다. 
 
한국가요의 미래를 만드는 일, 그것은 정부의 가요 강사 공인자격증 발급을 추진하는 일과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가요진흥원’의 설립이다.

“전국조직이 된 3,000여 명의 가요 강사들이 200만명의 가요 애호가들을 매일 교육하고 있습니다. K-POP의 뿌리를 가꾸는 이분들에게 정부공인 자격증을 수여하는 게 첫 번째 일이고 그 다음이 K-POP의 자원을 가꾸고 전 세계에 전파하는 ‘한국가요진흥원’의 설립입니다.”

소리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는 거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한 모택동은 틀렸다. 옛날부터 권력은 소리에서 나왔다. 제사장의 기도소리가 노래가 되고 권력이 된다.


군가에서, 찬송가에서, 찬불가에서, K-POP에서 권력이 나오고 지배력이 생긴다.

박상훈은 아는거다. 미국이 전 세계를 지배할  때, 온 세상은 ‘미국의 팝’이 지배하고 있었음을.

“K-POP이 세계로 뻗어 뿌리내릴 수 있게, 전쟁하듯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 가요 강사 회원들이 K-POP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가요진흥공사’가 가요 세계화를 위해 하루빨리 출범해야 합니다.


왜 ‘서동요’가 존재하고 무엇 때문에 '용비어천가'를 지었는지 눈치채야 합니다. 때때로 소리가, 노래가 군사력보다 외교력보다 강력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념에 찬 토로에 응답하듯 회원들이 소주잔을 들고 말했다. 

 

“200만 명의 가요회원이 노래를 쎄게 부르면 대통령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허! 너무 나갔어!'” 손사래를 치며 박상훈이 웃는다.

서동요라는 노래가 있다.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사모하던 나머지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며 이 노래를 가르쳐, 전국에 퍼지게 하고 결국 소원을 성취했다고 한다. 내용은 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시절 가사치고 참
신선하다.

예나 지금이나 히트곡이 태어나면 역사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작사작곡의 달인인 박상훈은 지금 무슨 노래를 만들고 싶을까?

''서동요 2 요!''

선화공주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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