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히말라야 블루' 강찬모편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19-07-01 1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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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모는 블루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강찬모는 이미 화가였다.

그는 바다같은 그림 한점에 빠져 익사를 경험한다.

스무살, 그 나이에 노을 빛은 왜 그의 눈동자안으로 자꾸만 가라 앉았을까?

그 놀 빛이 고여 눈물이 되고, 눈물이 차오르면 퍼내듯이 그림을 그렸다.

눈물젖은 놀 빛을 퍼내, 캔버스위에 풀어 놓으면 그림이 되고 그때마다 강찬모는 목이 탔다.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던 강찬모는 술 발로 그림을 그리다가 영빨 센 신흥 종교의 교주처럼 세상을 횡행 했었다.

그러던 어느 기운좋은 날, 그는 히말라야를 조우하게 된다.

히말라야는 그에게 물었다.

강찬모는 무엇인가?

강 찬모가 선뜻 대답했다 나는 '블루'다 !

히말라야는 비로소 그에게 '블루' 를 허락했다.

강찬모의 블루는 그냥 '블루'가 아니다.

'감성의 익사'를 경험했던 그의 바다를 건너고 세상에 어떤 물감으로도 그릴 수 없던 놀 빛의 미혹을 퍼내고 이제는 빈몸으로 정갈하게 벽을 마주 하는데 다행이다!

사방이 벽인 그 곳에서 그는 고리없는 문을 찾아 내고 웃는다.

어이없는 발견, 벽이 있는 곳엔 반드시 문이 있다!

헌데, 이 미칠듯한 갈증은 어디에서 오는지ㅡ

그때, 도반처럼 히말라야가 그를 부른다.

그 끔찍한 갈증의 끝에서 '블루'를 움켜 쥐고 강찬모는 히말라야를 만난다.

몸과 마음을 다 비워내고 이제 정체불명의 '블루'로만 남은 강찬모는 어딜 만져도 '블루'가 묻어 난다.

히말라야는 비수를 지르듯 묻고, 강찬모는 비명처럼 답했다.

'블루!'

강찬모의 블루는 '히말라야 블루'다.

'히말라야블루'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태어났다!

강찬모의 현재 정체는 '히말라야블루'다.

강찬모는 이제 비로소 '블루'다!

화가 강찬모를 만날 때마다 그의 등뒤에 서있는 히말라야를 본다.

때로는 스승처럼, 때론, 설산수행중인 선승의 도반 처럼 그렇게 그를 감싸고 있다.


소시적에 글 줄 깨나 읽은 문학도였던 그는 어느날, 그림 한 점을 조우, 그 그림 속에서 깊이를 알 수없는 바다를 발견하고 그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중앙대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강찬모는 화가가 됐다.

그후, 1978년 대만의 ''장디첸'' 이라는 산맥같은 동양화의 대가를 만난다. ''장디첸''은 강찬모의 피 속에 침잠해 있던 동양화의 DNA를 깨워내고 동양화의 씨앗을 품은 강찬모는 1981년, 한지에 채색하는 '조선채색비법'을 빼앗아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미술대와 쯔꾸바대학에서 5년간 공부하며 과거에 빼앗긴 ''조선 채색화''를 되찾아 돌아왔다.

그후 강친모는 대구대학 대학원에서 동양화 연구를 했다.

그렇게 화가가 된 강찬모는 세상의 화려하고 격렬함 안에서도 20c,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갈곳 몰라하는 실존주의적 현대인의 표정을 주로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해가지면 그 색깔은 농도가 더 진해지고 때때로 유화물감처럼 끈적한 쾌감이 그의 정수리부터 척추까지 흘러내려 밤은 때때로 그에게 구원의 시간을 허락했다.

화가 강찬모는 방황하는 청춘처럼 종로의 뒤안길 ''피맛골''을 배회하며 불안한 청춘들의 아지트 ''시인통신'' 에 출몰, 마초적인 술버릇으로 ''찬모형 떴다! 도망가자!''라는 유행어를 탄생케 했다.

그러던 어느날, ''찬모형이 사이비 신흥종교에 빠진거 같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확신했다.

평상시에 ''야! 너 이리와봐, 똑바로 술 따뤄봐. 뭘봐! 확!'' 이러던 그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도 또는 선배나 동료에게도 ” 제가 그동안 실수많이 했습니다. 용서 하시고 이제부터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한 잔 하시지요. 저는 이제 술 안마십니다!''

이렇게 바뀐 인간 강찬모에게 사람들은 오히려 공포감을 느낄 수 밖에...

''히말라야 갔다 오더니 저렇게 됐대. 뭔 일 이래? ''저렇게 사람이 확 변하믄 못 산다든디. 워쩐대 ᆢ''

그무렵, 강찬모는 '환골탈태'를 실제로 행하고 있었다.

생존력이 떨어진 매처럼 깊은계곡 어두운 동굴에 숨어서, 굳어진 부리를 바위에 부딛혀 깨뜨리고 온몸의 깃털을 뽑아 맨몸이 되어서 새부리와 새깃털이 나기를 기다린다는 매가 되려는 마음으로 기공을 수행하며 스스로를 부숴가고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목표대로 '히말라야산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도 히말라야의 정상 근처에 오르지 못했다.

히말라야 보다 더높은 욕심을 가진 그는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히말라야는 물었다. 네가 나를 아느냐고?

강찬모는 뚝! 뚝! 뚝!

가슴속으로 눈물만 떨궜단다.

해질녁, 카투만두의 허름한 골목길 입구에서 산으로 짐을 지고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러나 지금, 강찬모가 담아온 히말라야에는, 그 터무니없는 '블루' 속에는, 장전된 장약같은
희열이 숨어있다.

불꽃이 아니라 뜨거운 숨결만으로도 점화되어 가슴 속에서 폭발할 수있는,그것들이 엎드려 있다.

그것들은 몰래몰래 엎드려 있는게 아니라 '피죽피죽 삐져나오는 웃음처럼' 쏟아져나올 기회를 기다리고있다.

그는 때로 혼자 웃는다!

히말라야로 바위같은 짐을 메고 떠났던 아이의 아버지처럼, 높은 산 에다 짐을 풀고 돌아온 그 아버지처럼 그렇게 홀가분 하게 웃는다.

강찬모는 그렇게 우리에게 돌아왔다!

속세의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히말라야 몇미터까지 올랐냐고?

그때마다 강찬모는 히말라야를 그린 그림들을 내밀 뿐이다.

''가슴속에 '강찬모의 산' 이 있습니다.

시리도록 푸른빛의 하늘과 이미 흰빛의 경계를 넘어 빛나는 설산의 성스러운 조화가 나를 깨웠습니다.''

강찬모는 오랜 방황과 수련의 끝에 히말라야를 만나면서 그 자신 안의 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정체성과 가치관을 영점삼아 세상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국내 개인전은 매년 열렸지요. 거기다가 프랑스 루브르 국립살롱전 같은 해외 전시회등 해외 아트페어(Art Fair. 미술시장)에서는 전 작품이 ‘완판’되기도 했고, 2013년에는 프랑스 보가드성 박물관 살롱전에서 금상을 수상했었지요.''

화가가 전시회를 통해 그림을 판다는 건 돈이 된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가 있다.

비로소 세상과 터놓고 대화가 된다는 뜻이다.

''히말라야가 마음을 열게 합니다. 내가 그린 '히말라야'를 통해 모두와 소통 합니다.''

그에게 지금 '히말라야' 는 꿈이고 세상을 여는 통로이고 인생이며 판타지이며 그가믿는 성자의 고향이다.

히말라야 5000미터 지점, 강찬모가 늘 그 산을 만나는 그 곳에서, 그는 밤하늘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하는 별들을 그린다.

''매일 밤 사람들이 별을 헤면서 별을 따가거든요.^^ 그 숫자만큼 별을 그려넣어 야지요. 늘 부족하니까,,,''

그 중에 ''블루''는 무슨 뜻?

''아! 히말라야 블루요!''

''하늘과 가장 높은 그곳에서 '히밀라야 블루'를 발견했어요. 그 푸름에 뭔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히말라야 블루'는 영원을 향하는 소망, 무한한 사랑을 향한 날카로운 기도입니다''

''하늘을 향한 간절한 바램들이 그리도 절절한 푸른빛으로,히말라야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 푸른 빛깔이 그토록 비장하게 고운 이유, 그건 죽음 만큼 '투명한 기도'가 비로소 '히말라야 블루'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삶처럼 높낮이가 있어 도톨한 한지위에 청명한 느낌으로 스며드는 '히말라야 블루'는 순백의 설산을 그리워하는 지친 사람들에게 '방언'같은 생경한 축복이 된다!

강찬모는 이제 화가이기 보다 '히말라야의 도구'로 쓰임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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