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판결이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든다.

관리자 / 기사승인 : 2009-10-29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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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정치행정부장
드디어 미실은 여왕이 되고싶은 야망을 위해 정변을 일으킨다.

갖은 술수 끝에 왕의 옥쇄까지 손에 넣었지만 문제는 미실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을 세우는 일이었다.

적자인 덕만 공주가 있는 한 미실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라도 정당한 절차를 밟아 야망을 이루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미실의 부당성에 대항하는 세력의 기세가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형식적인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급기야 무력 진압에 의한 협박과 공포를 수단으로 삼기에 이른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방송 드라마 ‘선덕여왕’ 얘기다.

명분이 딸리면 상식적 절차를 포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는 식의 해법은 허구의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이 아닌 모양이다.

기형적인 모양새로 우리를 흥분시키는 비슷한 사례가 오늘 있었다.

미디어 법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그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 국회에서 통과된 미디어법과 관련, 야당 측이 신청한 권한쟁의 심판 소송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 등의 권한을 침해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미디어법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디어법의 표결과정은 적법하지 않지만, 법적 효력엔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방송법 표결 과정에서 처음 투표 했을 때 재석의원이 부족했으면 부결된 것인데 다시 투표를 한 것은 잘못이라는 야당 측 주장에 대해 재판관 6명이 인용, 즉 절차적 하자를 인정했고, 3명만 기각 의견을 냈다.

대리 투표에 대해서도 표결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의장 석을 지키던 다른 의원들의 표결권을 대신 행사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재판관들은 7대 2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방송법과 신문법을 처리할 때 제안 설명과, 질의 토론을 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관들은 문제가 있었다며 민주당의 권한쟁의청구 심판에 이유가 있다는 인용 결정을 내렸다.

당시 미디어법 법안 표결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헌재는 미디어법 중 신문법과 방송법 가결 선포를 무효로 해달라는 야당 의원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문법안에 대해서는 6대 3, 방송법에 대해서는 7대 2로 기각 결정했다.

지극히 상식적이어야 할 법 상식이 일반 국민의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판결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과정의 도덕성을 대수롭지 않다고 보는 헌재의 가치판단 기준이 과연 상식에 맞는 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판결임에는 틀림없다.

자칫 우리 사회의 양심의 마지막 보루라는 기존의 역할을 박탈당하는 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기왕에도 헌재가 비슷한 판결을 내렸던 적이 있기는 하다.

12.12 사태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판결.

그 때도 수단의 부도덕성을 문제 삼지 않아 민심을 흉흉하게 했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서는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의하면 서울이 수도이므로 수도이전은 불법이다’는 의견을 내놓아 관습헌법이라는 신조어의 주창자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국회의장은 앞으로 입법부로서의 품격과 자율성을 잃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다.

그 말의 진정성이 담겨있다면 최소한 이번 헌재 판결이 국회의 독립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폈어야 한다.

헌재의 손바닥에 들어가 있는 국회의 초라한 실체를 인식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안일한 논평이나 내놓고 있으니 하는 소리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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