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 "법은 우리나라의 약속이지."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19-07-16 14: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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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몇년 전 있었던 일. 유치원에 다니던 일곱 살 외손자는 할머니가 한의원으로 데리고 가 손바닥에 자석침을 여러 군데 맞고 왔다.

다음날 아침까지는 떼지 않아야 하는데 이 녀석은 가렵다고 자석침을 떼려 하고 딸은 '야, 인내심을 길러야 돼'라면서 말린다. 옆방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이더니 외손자가 고함을 지르면서 대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우리나라에 어린이가 인내심이 없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어? 응, 그런 법이 있느냐구?'

그 나이에 벌써 법을 따지는 게 기특하기도 했다. 다음 날 저녁에 내가 물었다.

어제 너, 법, 법 하던데, 법이 뭐야?'
외손자의 답이 걸작이다.
'우리나라의 약속이지.'

나라와 국민의 약속이 국내법이라면 나라와 나라의 약속이 국제법이다. 1965년의 韓日 청구권 협정은 한국과 일본의 약속이다. 징용공에 대한 청구권은 이 협정에 의하여 인정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이 약속에 어긋나는 선고를 했다. 나라 간의 약속을 깨는 데 동원된 논리는 우리 외교부가 인정한대로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유치원생도 납득하지 못할 약속파기, 이게 한국 사법의 수준이다. 법률기술자는 많고 법률가는 적은데, 그 기술마저 신통치 않다.

작년 10월 대법원이 징용공 배상 판결을 할 때 11명의 대법관이 찬성한 데 대하여 권순일 조재연 두 대법관은 청구권이 없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 다수 의견은 청권권 협정의 문안 해석과 배치되는 논리로서 이해하기 어려운데 두 사람의 반대의견은 간단명료하다.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하는 것이다>가 결론인데 물론 청구권협정은 헌법과 국제법에 합치한다. 더구나 50년 이상 韓日 양국이 이를 존중했고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정당성이 인정된 협정을 뒤집으려면 어마어마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한국과 일본이 이 사실의 중대성에 합의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조재연 권순일 두 대법관은 징용공에 대한 배상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다고 했다.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피해국민에 대하여 지는 책임은 법적 책임이지 이를 단순히 인도적·시혜적 조치로 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피해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으며 이러한 피해국민에 대하여 대한민국이 소송에서 그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다툴 것도 아니라고 본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원고들이 일본 국민인 피고를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訴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부는 2016년 10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며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의견서는 “피해자들이 한국 내 일본 기업들 재산을 압류하는 극단적 상황을 맞을 수도 있으며 이렇게 되면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고 했다. “이 문제는 법리적으로 한국이 이기기 어려운 사안이므로 정부가 문제 해결을 하지 않고 버틸 경우 한국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로 인식되고 과거사 문제에서 갖고 있던 도덕적 우월성까지 잃게 될 것이라거나 국제사회가 우리를 국제적 약속을 뒤집는 나라로 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고 했다.

외교부의 의견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특히, 지난 50년간 한일양자관계의 근간이 되어온 협정의 해석이 뒤흔들릴 경우 우리나라의 대외적인 신인도 손상을 불러올 것이며, 일본 기업들의 한국 투자와 비즈니스에 장애가 되고 한일간 경제관계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 국제소송의 관점에 주목하여, 일본 정부 또는 기업이 한일 투자보장협정 및 한중일 투자보장협정 등 투자보장협정에 따른 분쟁해결절차, 또는 ICJ(국제사법재판소) 회부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들이 있음.>

징용공 배상 판결을 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反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어서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따라서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런 경우엔 청구권을 인정한다는 단서 조항이 청구권협정에 있어야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청권권 협정에 없는 이유를 들고 나와 청구권협정을 부정한 것이다. 청구권협정에 의거하여 다투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논리, 즉 식민지배, 침략전쟁, 反인도적 불법행위를 이유로 두 나라가 합의한 약속을 失效시킨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식민지배에 대하여 금전적으로 배상한 경우는 사례를 찾기 어렵고 당시 징용공의 국적은 일본이므로 침략전쟁의 피해자라고 보기도 어렵다. 징용공의 처우가 反인도적 불법행위로 규정될 수준으로 잔인무도하였다는 증거도 미약하다.

청구권협정을 뒤엎고 국가간 약속을 무효로 돌릴 만한 사실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대법원이 내린 이 판결은 한국 외교부가 우려하였듯이 국제법에 어긋나고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데서 방어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국가간 약속 위반이란 점에서 치명적 결함을 지녔다. 자신들의 전문영역이 아닌 외교분야에 대한 대법관들의 순진한 애국심이 나라를 어렵게 몰아가고 있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여 막아보려는 노력을 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거래라고 하여 구속기소했으니 문재인 정권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출구조차 막아버린 셈이다. 스스로를 묶은 것, 즉 自繩自縛이다.

"법은 우리나라의 약속이지."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법의 원리를 머리 좋은 대법관들이 모를 리는 없다. 혹시 머리는 좋은데 마음이 그러지 못한 때문일까? 反日정서에 영합하는 판결을 내려 인기를 얻어보자는 허영심과 판결로 역사를 재단할 수 있다는 오만은 없었나? 법은 正義를 구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상식이라는 바이킹의 법률관을 상기해본다. 그래서 법은 약속인 것이다.

출처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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