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 목포 해양유물전시관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上

정찬남 기자 / 기사승인 : 2019-07-30 12: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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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도자기 '해남녹청자'··· 문화·예술적 가치 재조명
9~13세기 초 다양한 종류 생산
해남지역 대규모 민요터 다수 발굴
비색청자 선호문화로 명맥 사라져
청자·백자등과 비교 경쟁력 갖춰

▲청자 철화 국화넝쿨무늬 매병.

[해남=정찬남 기자] 1200여년 전 탄생돼 300여년 생산을 끝으로 명맥이 끊긴 해남녹청자, 녹암갈색도자기로 태어나 청자 탄생에 큰 영항을 주고 역사 속에 사라진 녹청자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 사실상 잊혀진 도자기였다.

그런데 최근 해남녹청자가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오는 10월 13일까지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해남녹청자들을 보면 저급에서부터 고급 녹청자까지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갖춘 자기로 생산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청자 유물에서 볼 수 없는 철화문녹청자장고는 그 시대의 도공들의 창의력에 경외심을 갖게 했다.

<시민일보>는 해남녹청자가 도자기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발자취를 찾아 녹청자를 재조명하며 제2의 탄생을 위한 부활 가능성 타진과 현재 유통되고 있는 청자·백자·분청자 등과 비교해 경쟁력과 차별성을 이끌어 내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도자문화 산업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또한 9~12세기까지 한반도에 분포돼 있던 전국 각 지방의 녹청자와 해남 녹청자의 비교, 인천 서구의 녹청자와 부안군의 녹청자 관리 운영, 강진군의 청자산업의 현주소도 집어보며 해남녹청자에 대한 해남군의 정책지원 등을 제안해 본다.


■ 녹청자 도자기의 시원

귀중함의 사전적 해석은“가치를 정할 수 없을 만큼”을 뜻한다. 조선시대 막사발은 함부로 사용했던 그릇이지만 일본은 보물로 지정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민초들이 국·밥·찬 등 다용도로 사용한 식기그릇인 막사발을 일본은 보물로 지정했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평가시각이 극명한 것은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란 해석을 낳게 한다.

그런 반면 녹청자는 비색 청자를 탄생시키기까지 태토와 유약, 성형, 예술적 조형미, 표면 문양 등 비약적인 도자기술을 발전시켜온 귀중한 도자문화유산이지만 정작 청자의 명성에 밀려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잊혀진 도자기다. 학계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녹청자기류가 약 9~13세기 초까지 다양한 종류의 녹갈색 도자기로 생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남녹청자 재현에 성공한 전라남도 도자기 명장 남강 정기봉 도예가가 발간한“해남녹청자의 특성 분석 및 재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도 6건에 불과하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자기소(磁器所)가 각 1곳만 소개 돼 있고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등의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이는 민수용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라고 기술했다.

당시 우리의 토기들은 중국의 선진 도자기술에도 훨씬 못 미친 저도(底度:1천도 이하)에서 구워낸 도기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해남의 도공들은 저급도기 녹청자 수준을 칼슘성분의 회유와 잿물을 섞은 유약과 고화도의 산화번조(酸化燔造:산소를 넣어서 연료를 완전히 연소시키는 방법) 및 환원번조(還元燔造:가마의 온도가 1100℃ 이상으로 올라갈 때, 땔감을 많이 넣고 산소가 유입되는 가마의 모든 구멍을 막아 불완전연소가 되게 하는 방법)로 구워낸 방법을 찾아 녹갈색을 띤 경도(硬度)로 유리질화 된 녹청자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도자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아름다운 비색 청자 탄생에도 영향을 준다. 때문에 녹청자는 청자에 버금가는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받아도 될 훌륭한 문화재적 자산이지만 녹청자에 대한 학술적 발표나 본격적인 위상 정립 등에 관한 자료는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 이는 사료적인 자료가 부족해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전해온 사료만으로는 녹청자를 청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녹청자의 생산과 상감기법, 철화문 기법 등이 중국 도자기보다 더 앞서고 또 기술접목도 있었다는 주장을 내 놓기도 했다. 따라서 정부와 학계, 녹청자와 관련된 지자체 등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을 밝혀줄 학술적 연구를 위한 행·재정적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 중국 비색청자 선호문화, 한국의 동조현상은 녹청자 성장의 걸림돌

중국에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녹청자와 유사한 녹유자기와 흑유, 비색청자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유독 비색청자의 호응도가 더 높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붉은색(복을 부르는 색), 황색(황제의 색), 청색(귀족, 우아함), 옥색(건강, 장수) 등이다. 물빛의 옥색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색상의 도자기들 중 옥빛과 닮은 비색 청자의 선호도가 더 높은 편이 아닌가 싶다. 당시대의 한반도에도 청자에 대한 편향 현상이 지속되다 조선조로 바뀌며 백자, 분청자기 등으로 대체 된다. 만일 중국의 도자문화가 녹유자기를 더 선호했다면 우리나라 녹청자도 더 높은 위치에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중국의 녹청자는 녹유자기라 칭하며 우리의 청자처럼 고운 점토를 사용한 양질의 고급자기인 반면 우리나라 녹청자는 약간의 모래가 섞인 사질토로 빗어낸 저급 녹청자가 대다수다. 그러나 해남군 산이지역에서 출토된 녹청자 편과 서남해안 각지의 해저에서 인양된 원형의 녹청자들 중에는 고급청자의 태토처럼 잘 정제된 점토로 성형된 기물을 갑발(匣鉢:자기를 개별로 굽기 위한 큰 통)을 이용해 생산된 고급녹청자기들도 발굴 됐다. 비록 비색의 고급청자에는 미치지 못 했지만 고급화된 해남녹청자는 본격적인 청자 전성기 전인 12세기 이전까지 나름의 틈새시장을 확보한 가운데 민요(民窯)로서 전국에 공급됐다.


■ 해남녹청자 기술수준 및 종류는 전국에서 생산된 녹청자보다 연대 앞서고 다양

녹청자는 9~12세기까지 서남해안을 접한 북녘의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 인천시 서구 경서동, 경기 고양시 원흥동,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시흥시 방산동, 용인시 서리 충남 공주군 사곡면 신영리,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전북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부안군 용계리, 전남 강진군 삼흥리, 용운리, 고흥군 운대리 등에서도 생산됐으며 이외 지역에서도 생산된 흔적들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해남녹청자는 이들 지역보다 더 앞선 8~9세기부터 생산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영암 구림도기가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기물에 유약을 입힌 시유도기의 시발지로서 해남군이 영암군과 인접한 지역의 연관성도 무관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더 세련된 기술력과 다양한 종류의 녹청자기류가 생산됐음을 출토 편(片)과 해저에서 인양된 녹청자를 통해 확인됐다. 해남녹청자의 종류로는 완(碗), 사발(鉢), 호(甁), 장고, 화형접시, 유병, 편병, 항아리, 흑유자기, 백자 등이다. 1983년 12월 완도 약산 어두리 앞바다와 전북군산 십이동파도, 그리고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 앞바다 등에서 인양된 녹청자들 중에는 철화청자장고 4점도 인양돼 당시 도자기로 악기를 생산한 기발한 발상은 생산범위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학계에 놀랄만한 충격을 안겼다. 이 철화녹청자 장고 중 한 점은 KBS 진품명품 평가에서 희소성과 독창성, 예술적 조형미를 갖춘 도자기로서 12억 원의 최고 감정가를 받는 등 해남녹청자가 청자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세련된 철화문 도자기로 평가되는 순간이었다.

또 철화청자는 산이면 도요지에서 최초 제작한 고려청자의 한 종류이자 색과 제작방법에선 중국 도자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자기로 평가된다는 주장도 있다. 녹청자는 유약을 얇게 처리함에 따라 철화가 발달돼 있지만 때로는 양각과 음각, 상감으로 제작된 녹청자도 발굴됐다. 철화청자는 철 함량이 많은 황토로 도자기 표면에 문양을 그려 제작하는 방법이다. 이에 비해 강진청자의 특징은 몸체에 문양을 그려 흙을 긁어낸 자리에 백토를 메우는 상감기법의 청자다. 비색의 강진청자가 귀족적이고 차가운 느낌이라면 산이 철화청자는 따뜻하고 서민적인 도자기로서 민수용으로 전국 보급망을 확대 했다.

이렇듯이 도자기 생산기술의 절정기에 있는 해남지역에는 162기(화원56기, 산이 106기)의 가마터가 발굴됐다. 해남지역은 강진지역 고려청자 가마터 180여기에 버금가는 녹청자 생산시설을 갖춘 전국 두 번째로 큰 대규모 생산단지를 갖춘 것이다.

해남녹청자는 서남해안 일대에서 생산된 녹청자들과 달리 민요에서 도자기술을 발전시켜 관요인 강진청자를 만들어 낸 주도적 역할을 해온 것으로 일부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는 해남녹청자 생산연대가 강진청자 생산연대 및 전국 각지의 모든 녹청자 생산지역보다 앞서 있고 해남녹청자의 쇠퇴기 이후 관요로 지정된 강진청자 생산을 위해 해남도공들이 시차를 두고 강진으로 집단 이주 했다는 설, 그리고 160여 가마에서 해남녹청자를 생산 했던 1000여명에 달하는 도공들과 그 가족들이 사라지고 녹청자는 명맥이 끊긴 후 인근 강진에는 180여기의 청자생산 가마가 조성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해남녹청자가 당시 상감기법의 흑청자를 생산 한 것도 무관하지 않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측면도 있어 이에 대한 명확한 고증이 없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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