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에 반발하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회의장 출입문을 해머로 부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공무집행방해죄를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전 총무국 차장 손모(29)씨 등 민주당 당직자 2명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죄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박진 외통위원장이 야당 위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막기 위해 질서유지권을 행사한 것은 위법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박 위원장이 출입문을 폐쇄한 것이 결국 이 사건 소동의 원인이 됐고, 야당 외통위원들의 회의장 출석권을 박탈하면서까지 심사절차를 강행해야 할 특별한 사정도 찾기 어렵다"며 "출입문을 봉쇄해 다른 정당 소속 외통위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막은 행위는 상임위원장의 질서유지권 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한 조치"라고 판시했다.
이어 "누구든 국회의원이 본회의장 또는 위원회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되고, 특히 국회 경위가 상임위원 출입을 막은 것은 이를 정당화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하다"며 "위원장의 위법한 조치를 보조한 것에 지나지 않아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회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인 민주당 당직자들의 행위는 위법한 직무에 대항한 것으로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씨 등은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을 회의장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출입문을 막고 있던 경위들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옷을 잡아당기는 등의 행위를 했다"며 "이는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하는 공무원에 대항한 것에 지나지 않아 공무집행의 적법함을 전제로 한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다만 손씨를 비롯해 회의장 출입문 및 집기를 해머로 부순 혐의(공용물건손상)로 기소된 진모(46)씨 등 당직자 5명에 대한 물건 파손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공용물건손상죄 및 국회회의장소동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은 명백하고 합법적 절차를 외면한 채 곧바로 폭력 행동에 나선 것은 그 방법이나 수단에서 상당성이 결여돼 있다"며 "위법성이 조각되는 정당행위나 긴급피난 요건을 갖춘 행위로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원심과 같이 유죄 판단을 내렸다.
손씨 등은 2008년 12월 국회 외통위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정 과정에서 여당 위원들이 야당 위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회의장을 봉쇄하고 집기로 바리케이트를 쌓자 이를 해머로 파손하고 국회 경위와 몸싸움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공무집행방해죄를 무죄로 보고, 공용물건손상죄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400~5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박 외통위원장이 소란이 예상된다면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국회법상 적법한 조치로, 경위를 밀치거나 폭행한 것은 적법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행위"라며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보고 손씨 등 2명의 벌금액을 600만원으로 높였다.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문학진 의원과 통합진보당(옛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1·2심에서 벌금 200만원과 벌금 5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으나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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