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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5월 21일 기습적인 CJ그룹 본사 압수수색과 함께 검찰 조사가 시작된 지 13일 만으로 직원들은 대체적 반응 ‘놀랍다’는 것이었다.
"책임질 것이 있다면 내가 모두 책임질 것”이라는 이 회장의 메일에는 ‘미안하다’ ‘사죄한다’는 표현이 수 차례 담겨 있었다. 또 "여러분의 꿈과 일터가 이번 일로 상처 나서는 안 된다. 저 개인의 안위는 모두 내려놓고 CJ와 임직원들의 성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는 임직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본인의 부족함과 과오로 인해 지금 회사의 위기를 초래한 데 대한 자책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재벌 총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일 만큼 임직원들에게 강한 사과 메시지를 보낸 것은 이 회장의 평소 자세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 회장은 평소 주변에 ‘겸허(謙虛)’라는 말을 자주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할아버지인 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영향이 크다. 알려졌다시피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때문에 이재현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덕분에 이재현 회장은 할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체격부터 생김새, 말투까지 할아버지와 상당히 닮아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금도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자택에는 ‘겸허(謙虛)’라는 글귀가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이 회장의 가훈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직접 써서 물려준 것이다.
급식사고 직접 사과방문, 1천억원 신주인수권 포기… 재벌 3세답지 않은 결정 ‘눈길’
알고 보면 이재현 회장의 이런 결정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6년 삼성에서 분리된 제일제당그룹 공식 출범 이후, 이재현 회장은 재벌 3세로서는 보기 드문 몇 차례의 결정을 내려 왔다.
이 회장의 결정 중 백미(白眉)는 지난 2006년 발생한 당시 CJ푸드시스템(現 CJ프레시웨이)의 급식사고 수습 과정에서 나타났다. 당시 신사업 구상 등을 위해 해외 출장 중이던 이 회장은 사고 소식을 보고받자 출장 일정을 일주일 가량 단축하고 급거 귀국했다. 그리고 학교급식 사업을 철수하고 조리시설 기자재를 모두 기부할 것, 피해 학생의 치료비도 전액 부담할 것 등을 지시하며 사고 수습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급식 사고가 발생한 학교를 모두 일일이 방문하며 학교 관계자 및 학부모들을 만나 고개숙여 사과하고 책임있는 처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룹의 오너가 직접 나선 이 회장의 ‘사죄의 행보’에 대해 기업 관계자 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등도 상당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너 개인의 이익보다 회사의 신뢰도를 위한 결정도 눈길을 끈다. 2002년 4월에는 CJ엔터테인먼트의 주식 600만여주를 받을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과감히 포기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액면가 1천원이었던 CJ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18,700원. 약 1,122억원의 주식을 포기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에 대해 “1천억원의 차익을 포기한 대신 시장의 신뢰를 샀다”고 평가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CJ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는 CJ엔터테인먼트가 제일제당에서 분사할 당시, 제일제당이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으로 출자에 어려움을 겪자 대주주인 이재현 회장이 상당 금액을 출자한 것. 이에 따라 이 회장은 60억원 상당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잇따라 흥행시키며 주가가 공모가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해 대주주가 큰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지적이 일자, 이를 과감히 포기하며 회사에 큰 호재를 안겨준 바 있다.
2003년에는 CJ㈜로부터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인수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즉각 이를 CJ에 반환하면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변칙 경영권 승계의 중심에 있던 에버랜드 CB에 적정가격 논란이 일며 CJ가 여기 휩싸일 우려가 생기자, 투자자의 신뢰를 위해 이 회장 스스로 신속한 용단을 내려 ‘재벌 3세답지 않은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회장' 직함 내려놓은 이재현'님' 리더십… 재계 14위 기업 성장 이끌어
이는 이재현 회장의 평소 경영 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임직원들에게도 ‘겸허’라는 말을 자주 강조하는 이 회장은 “남 앞에서 단순히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자만하지 말고 작은 것으로부터도 배우려는 자세를 항상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문화가 회사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한 대표적인 것이 ‘호칭 파괴’다.
CJ그룹은 2001년 1월, 대기업 최초로 직위와 호칭을 없애고 ‘님’이라는 호칭을 쓰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수직적인 권위보다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누구나 자유롭게 창의적인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아래에서도 배우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당시만 해도 낯설던 이 제도를 도입하며 이재현 회장은 이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호칭변경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위에서부터 변해야 가능하다. 호칭이 변하는 것은 단순히 부르는 이름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오픈마인드가 되고 의사소통도 활발해 지고 'CJ Value'가 자연스레 실천된다”
CJ그룹 사내 인트라넷에는 ‘이재현님 대화방’이라는 코너가 있다. 본인도 회사에서 한 사람의 직원인 ‘이재현님’으로서 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커뮤니케이션 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겸허한 자세가 기업 성장에도 큰 원동력이 됐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갖는 순간 현실에 안주하게 될 위험이 있다. 주변의 의견에도 귀를 막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황태자’로 자라온 기업의 후계자일수록 주변의 ‘쓴 소리’보다는 ‘감언이설’에 익숙한 경향이 크다. 이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위기를 준비할 것을 주문해 왔다.
매출액 1조 7000억원의 식품 기업을 매출액 27조원, 재계 14위의 종합생활서비스기업으로 성장시킨 비결을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겸허(謙虛)’의 리더십, 어떻게 위기 타개할까
최근 CJ그룹이 사면초가에 갇혔다. 새 정부의 첫 번째 ‘재벌 손보기’의 타겟이 되며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그룹 모태인 CJ제일제당의 창립 60주년을 맞아 화려하게 제 2의 도약을 선포하려던 계획이 무색한, 그야말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더 큰 문제는 CJ가 우군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언론 역시 CJ의 편이 아니다. 특히 종편채널을 보유한 주요 언론의 입장에서, 소위 ‘잘나가는’ 케이블 채널을 다수 보유한 CJ그룹이 곱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이유다.
전경련 등 재계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기업들이 검찰 수사를 받을 때면 이구동성으로 “기업 활동이 어려워진다”고 엄호하던 것과는 딴판이다. 경제민주화, 지하경제 양성화 등 새 정부의 경제정책 코드에 어긋날까 조심스러운 데다 분위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두 번째 타겟이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벌 손보기’가 지나치게 과한 것 아니냐는 동정섞인 여론도 흘러나온다. 과오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겠지만, ‘기업 죽이기’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CJ그룹에는 현재 4만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과연 이 회장은 이메일에서 언급한 ‘4만 명의 꿈과 일터’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겸허(謙虛)’의 리더십이 이번 위기 타개에 어떤 열쇠가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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