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재갈 물리기’ 폭거 멈춰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8-25 13: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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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언론재갈법’이라 불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명백한 의회 폭거다.


거대 의석의 힘을 앞세운 민주당의 입법 독주는 마치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듯 거침이 없다.


실제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이날 오전 3시53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이뤄진 언론중재법 표결에서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찬성표를 던졌다. 표결에 참여한 이는 박주민·김남국·김승원·김영배·김용민·김종민·박성준·소병철·송기헌·최기상 등 민주당 의원 10명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등 11명이다. 전체 법사위원 18명의 과반이어서 단독 의결됐다.


사실상의 ‘날치기’ 처리한 것이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처리 과정은 이처럼 독주와 편법, 졸속으로 점철됐다.


야당 몫 상임위원장을 돌려주기 전에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은 거대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법안 발의 이후 1년 넘게 충분한 논의를 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논란의 핵심인 독소조항들은 지난 6월 이후에야 본격 논의가 시작됐다. 국내외 언론단체는 물론 국제 언론단체들이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국회가 제대로 논의하기 시작한 게 사실상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언론개혁이란 미명으로 ‘입법 폭주’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친문(親文) 정당’을 자처하는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을 안건조정위 야당 몫 위원으로 배정해 국회선진화법상 법안 숙고·여야 협의 취지를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오늘 새벽에도 민주당·열린민주당 의원들이 야당 의원 부재 속에 약 1시간 40분 동안 언론중재법을 심사했지만, 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는 형태에 불과했다.


실제로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을 낮췄을 뿐만 아니라, ‘보복·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하는 경우’는 ‘보복·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수정됐다. 소병철 의원이 “기존 문구는 ‘피해를 가중하지 않으면 허위·조작 보도에도 고의·중과실로 추정이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라고 반대 의견을 낸 까닭이다.


이에 따라 법사위에선 ▶보복·반복적인 허위·조작 기사 ▶정정 보도된 기사를 복제·인용한 기사 ▶제목·시각자료로 내용을 왜곡한 기사 등 3가지를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행위로 추정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최종 가결됐다.


민주주의를 군사정권보다 못한 수준으로 되돌리고 만 것이다.


물론 일부 언론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권력 감시 역량,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도 하다.


당명에 ‘민주’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정당이 ‘반(反)민주적’인 이런 법안을 밀어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의 이 같은 폭거에 대해선 당의 주인인 민주당 당원들이라도 나서서 이를 저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이 붙은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일부 조항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론 보도까지 위축시킬 위험이 분명 존재한다”라며 공개적으로 개정안을 조목조목 비판했지만, 민주당은 막무가내다.


대형 로펌 변호사 출신인 민주당 오기형 의원도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의 활동과 관련 이점만 특화해 징벌배상제도를 논의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지만, 이 역시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막대한 액수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무기로 언론사를 겁박함으로써 시민의 알 권리는 무시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오죽하면 친여 성향 언론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을 전면 수정하라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은 심히 유감”이라고 했겠는가.


대한변호사협회도 “언론중재법의 독소조항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해 민주주의 근본을 위협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세계신문협회도 최근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했으며, 국제언론인협회도 “모호한 규정과 개념적 불확실성 때문에 언론의 비판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 것이다. ‘민주’ 가치를 훼손하는 정당이 아니라 ‘민주’ 가치를 지키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라도 집권당은 이쯤에서 의회 폭거를 멈추고 ‘언론재갈법’ 추진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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