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민주당 합의 파기 비판 자격 있나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05-08 11: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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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같은 말을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공감이 가기도 하고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메시지 못지않게 메신저도 중요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여야의 21대 국회 후반기 원(院) 구성 합의 파기를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는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넘겨주기로 한 지난해 7월 양당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의미다.


6·1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에 이어 후반기 원구성 합의 파기까지 연속되는 여야 대치 구도가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합의 파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어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끝까지 고집하며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도층이 그런 민주당에 표를 줄 리 만무한 까닭이다.


국회 관행상 국회 법안 처리 과정의 물길을 쥐고 있는 법사위원장직은 제1야당이 맡아왔다.


이른바 '입법 수문장'으로 불리는 법사위원장은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을 모두 장악한 정부 여당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로 야당이 맡는 게 1997년 김대중 정부 이후 내려온 전통이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180석 거대한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은 이 같은 관례를 깨고 말았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명분 삼아 법사위원장직을 여당이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었다. 민주당은 당시 여당이 입법을 담당하는 법사위원장직을 맡고, 야당이 예산을 담당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구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직을 맡지 못하면 어떤 상임위원장직도 받지 않겠다는 야당의 벼랑 끝 전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독직하는 입법독재를 자행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세상의 주인은 민주당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지난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선거에서 완패했다.


뒤늦게 민주당은 의회 독재와 입법 독주라는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작년 7월 후반기 법사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양보하는 조건으로 상임위원장직을 11대 7로 분배하는 전반기 원구성 재협상을 타결했다.


그런데 이걸 다시 뒤집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전통적으로 야당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법사위원장을 맡아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반드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관이다.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국민의힘이 관례대로 야당이 법사위원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하면서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선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다시 말을 바꾸는 민주당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4월 재보선 참패에 이어 대선 패배에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입법 독주를 꿈꾸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니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 한 번 회초리를 맞아도 싸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을 동시에 차지하겠다는 것은 독선이자 뻔뻔스러움의 극치라고 아니할 수 없다"라며 국회는 172석에 이르는 민주당이 상임위 및 본회의 소집과 법안처리, 의원 징계까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의회 독재상황이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해서 얼마나 더 많은 폭거를 저지르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의 원 구성 협상 파기 선언은 정당성도 명분도 없다. 국민 눈에는 치졸한 대선 분풀이로 보일 따름이다. 민주당은 더 국회를 우습게 만들지 말라. 민주당이 또 나쁜 선례를 만든다면 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른바 ‘검수완박 중재안’을 섣부르게 합의했다가 파기한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자신이 합의를 파기한 것은 괜찮고, 민주당이 합의를 파기한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 또한 ‘내로남불’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미 오염된 메신저이다. 원내대표직을 사임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그런 비판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사실은 ‘검수완박’ 정국에서 책임을 지고 벌써 사표를 던졌어야 했다. 중재안 합의로 혼선을 빚었고, 그로 인해 민주당의 잘못이 희석됐음에도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모습이 역겹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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