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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공공조달관리사' 국가기술자격을 신설하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2026년부터 시행될 이 자격은 조달 과정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로 조달기획부터 계약 체결, 납품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입찰 담합, 부정 계약 등 조달 시스템 내 부패 요인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는 탐정제도의 현실과 대비된다. 공공조달관리사는 신속하게 국가자격으로 제도화된 반면, 탐정업 법제화를 위한 「공인탐정법」은 4차 산업혁명 대응과 신직업 창출 관점에서 높게 평가받았음에도 아직 22대 국회에서는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떤 전문직을 어떤 기준으로 제도화하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공조달관리사 제도는 현재 활동 중인 탐정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두 직역은 활동 영역은 다르지만 기능적 교차점이 많다. 입찰 비리 조사, 계약 이행 감시, 공급업체 실사 등은 탐정의 전문 조사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미 민간 탐정들이 공공영역 감시활동에 참여하며 '제도적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달청의 신고포상금 제도가 주목할 만하다. 조달청은 「불공정 조달행위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 지급에 관한 규정」에 따라 최대 2천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포상금 지급액은 지속 증가하고 있다(2022년 1,298만원→2023년 2,658만원→2024년 4,992만원). 이는 조달 비리 감시 수요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탐정이 이러한 불공정 조달행위 적발에 나선다면 고도의 조사기법과 증거수집 능력을 활용해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하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동시에 전문성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얻을 수 있다.
연간 200조 원 규모의 조달시장에서는 입찰 담합, 자격 허위기재, 부정 계약 등 다양한 부조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디지털 포렌식, 데이터 분석 등 현대적 조사기법을 적용하면 기존 방식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복잡한 비리 구조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가 있는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에서는 '공익탐정론'이라는 교과목을 개설하여 정규 교과과정으로 운영 중이다.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다. 행정사 단체가 공공조달관리사를 미래 유망직종으로 판단하고 진출을 모색 중이다. 행정사는 주로 관공서 업무를 대행하며 조달 관련 서류 작성과 절차에 익숙한 직역이다. 이들이 새로운 자격제도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기존 업무와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전문영역 확장 기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는 탐정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탐정 역시 법제화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공공조달 관련 법령과 계약, 예산에 관한 전문지식을 습득해 활동 영역을 선제적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조달관리사가 '기술자격'이고 향후 도입될 공인탐정이 '전문자격'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두 직역 모두 공공영역의 투명성을 높이고 불공정 행위를 견제한다는 공익적 가치를 공유한다. 따라서 탐정업계는 관련 자격 취득을 통한 전문성 증명과 실무성과 창출로 공적 영역에서의 신뢰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탐정업에 관한 법령이 없어 조달 비리 신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조달청 신고포상금 제도는 신고자의 직업이나 자격을 제한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문적 조사 능력을 갖춘 탐정이라면 일반인보다 정교한 증거 수집과 비리 구조 파악이 가능하다. 고도화된 조사기법으로 입찰 담합이나 부정 계약을 밝혀내는 성과야말로 탐정업 법제화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탐정은 더 이상 그림자 속 존재가 아니라 제도 속에서 당당히 기능하는 공익적 감시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탐정업계가 공공영역에서 역할을 확장하고 가시적 실적을 쌓을수록 입법화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법제화를 기다리기보다 실질적 능력과 공공가치를 입증함으로써 업계 스스로 제도적 변화를 끌어내야 할 시점이다. 공공조달관리사 자격 신설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前총경,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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