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진은 ‘파리목숨’인가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2-07 11: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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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수행비서 해고' 논란이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보좌진협의회는 7일 성명서를 통해 "류 의원의 논란에 보좌진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며 류 의원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류 의원은 "분명히 말하지만, 부당해고가 아니다"라며 "국회 보좌진은 근로기준법, 국가공무원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류 의원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근로기준법이나 국가공무원법이 적용되지 않는 ‘파리목숨’인 까닭이다.


현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엔 300명의 국회의원을 위한 개인 사무실이 있다. 보좌진들도 이곳에서 일하는데, 의원 한 명당 채용할 수 있는 보좌진은 총 9명으로.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 7급, 8급, 9급, 인턴 비서 1명씩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정무·정책·수행·홍보 등의 역할을 하는데 한 개만 맡는 경우는 드물다. 의원 운전기사도 보좌진이 맡는 경우가 많고, 급할 땐 어떤 업무에든 투입될 수 있다.


이들 보좌진 사이에서는 이른바 '국회의원 블랙리스트'라는 게 있다. 보좌진 교체가 잦은 의원이 명단에 오른다.


최근 자녀의 심장 수술 때문에 2주간 휴직을 요청한 여성 보좌진을 가차 없이 잘라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의원도 있고, 운전기사를 비롯한 보좌진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명단에 오른 의원도 있다고 한다.


또 보좌진들에게 미용과 쇼핑, 자녀 관련 업무 등 개인적인 용무를 맡겨 이를 견디지 못한 보좌진들이 제 발로 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들의 채용 여부는 오로지 의원의 손에 달렸다. 서류 한 장으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그야말로 '파리목숨'인 셈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서 정하는 사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별정직 공무원인 보좌진에겐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좌진의 임명·면직은 전적으로 의원에게 달려 있다. 보좌진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실제로 보좌진의 해임이나 징계 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의원실에서 국회 사무처에 보좌진의 면직요청서를 제출하면 그 즉시 해임이 이뤄진다. 별다른 해임 사유 없이도 면직요청서 제출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제도 개선은 요원하다.


사실 국회 의원실의 부당한 노동제도 등은 국회 사무처를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운영위에서 이 문제를 두고 논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보좌진 해고 사실을 미리 통보하도록 하는 '면직예고제' 법안마저도 20대 국회에서 임기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지적이 나오겠는가.


오늘 출근했다가 의원이 ‘너 나가’ 하면 다음 날 면직되는 게 국회의원 보좌진이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정작 보좌진의 고용 및 노동과 관련해선 법적 근거가 거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정당 최초로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말 운영위에서 노조설립 방침을 정하고 준비작업을 해 왔으며, 조만간 운영위 의결을 거쳐 서울지방노동청에 노조설립 신청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그동안 각 정당에는 사무처 직원들의 노조는 있었지만 통상 보좌관으로 불리는 의원보좌직원들의 노조는 결성되지 않았다.


진보가 아닌 보수 정당 소속 보좌진들이 노조를 통한 권익 보호 움직임에 발 벗고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크다.


물론 현행법상 노조 결성의 실익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대로 주저앉아있는 것보다는 낫다. 노조가 최소한 면직 30일 전에 해고를 통보하도록 하는 '면직예고제' 등을 통해 직업 안정성 보장을 강화하는 역할만 제대로 수행해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류호정 의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행법상 보좌진은 파리목숨이기에 법률상 ‘부당해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해고가 도의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류 의원은 더 고개를 숙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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