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개헌 논의, 지금이 적기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4-22 13: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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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에서 곧 개헌 문제를 공론화할 것 같다.


다음 달 2일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취임하면 당내에 국가비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개헌 등 정책 과제를 논의한다는 것이다.


친문 의원이 주축이 된 의원 연구모임 '민주주의 4.0' 내부에선 현재 청와대 비서실 중심의 대통령제를 국무위원과 정당 중심의 대통령제로 개선하는 방안이 아이디어로 나오고 있다.


실제로 21일 오전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속 국회 국민통합위원회 주최로 열린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제도 개선’ 토론회 발제에서 친문성향의 김종민 의원은 “정치 양극화와 정치 관료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청와대 중심 정부에서 총리와 내각 중심 정부로 전환해 ‘민주적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개헌 논의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87년 낡은 체제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정치권은 물론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도 폭넓게 형성돼 있는 마당이다.


87년 체제는 노태우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합의로 만들어진 체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4ㆍ13 호헌(護憲)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반발한 국민의 분노가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이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 선출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었을 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근원적 문제는 그대로 두었다는 점이다.


물론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 국회의 국정감사권 부활 등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면 3김은 왜 그런 개헌에 선뜻 합의했을까?


그들의 속내를 알 길은 없지만, 아마도 노태우 이후 자신들이 5년씩 돌아가면서 제왕적 대통령을 하겠다는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 모두가 불행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87년 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 모두가 불행한 임기 말을 보내야 했다.


노태우는 구속됐다가 사면받아 석방되기는 했으나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정한 예우 자격을 박탈당했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자식들이 감옥에 가는 참담한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으며, 노무현은 비극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명박-박근혜는 지금까지 구속수감 중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그러면 다음 대통령은 다를까?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설사 석가나 예수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런 불행한 운명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당선 가능성이 큰 차기 유력 대권 주자들의 욕심 탓이다.


노무현·이명박이 제안한 개헌이 유력 차기 주자였던 박근혜의 반대로 무산된 것도 그런 연유다. 이처럼 당권을 장악한 확실한 차기 주자가 존재한다면 개헌론은 탄력을 받기 어렵다. 그러나 여당 주류인 친문에서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는 대권 주자가 없다. 국민의힘에도 이렇다할 대권 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나마 두각을 보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아직 소속 정당이 없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여야 합의로 개헌을 논의할 최적의 시간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에선 “대통령 임기 말에 개헌 논의를 하는 건 적절치 않다”라며 거리를 두고 있으니 문제다.


물론 임기 말보다는 임기 초에 개헌 논의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미 그 시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욕심 탓에 놓쳐버린 것 아닌가.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게 바른 방향이라면, 지금이라도 개헌 논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를 단절하지 못하고 87년 체제의 역대 대통령들처럼 불행한 말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개헌 논의 없이는 정치 쇄신을 논하기 어렵다. ‘개헌’ 없는 ‘개혁’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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