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나는 고려의 '청자'다 !"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8-17 15: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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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 달라이라마, 로마제국의 영웅 케이사르 이 사람들이 도자기 작가 김세용과 전생의 인연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를 깊이 생각한 적이 있어요. 생각의 통로 끝까지 갔었지요. 온몸이 달아올랐고 견딜 수 없는 열기 속에서 사방에 벽이보였어요. 불사위의 파도가 가라앉고 깊은 심연같은 열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열기의 극한 속에서 느끼는 청량감, 그 까타르시스의 정점에서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듯, 장자의 꿈 속에서 깨달음의 벽을 통과하듯, 그렇게 '청자'를 만났습니다. 나는 청자의 시대라 칭하는 고려의 어느 장인의 가마에서 태어났을 겁니다. 아마도 엘리자베스2세와 달라이 라마, 로마제국의 영웅 카이사르도 전생의 인연으로 저의 현신인 청자를 만나게 됐을 겁니다"


그의 콜렉터인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달라이라마의 인연, 그리고 이탈리아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자신의 청자에 관한 생각을 드라마틱 하게 말했다.


상상력이 참으로 풍부한 크리에이터이다.

김세용이라는 남자, 사람들은 그를 명장이라 칭한다.

그러나 그는 이순신장군처럼 나라를 구한적도 없고, 적벽대전을 치른 제갈공명 처럼 위대한 책사도 아니다.


그저 농사짓듯 흙을 껴안고  살았다. 그렇다고 누구나 명장이 되는건 아니다. 될때까지 계속하는 그의 성격 탓이다.

흙은 농사꾼을 품어주고 살지만 김세용은  반대로  흙을 껴안고 몸부림 치면서 살았다.


그는 흙을 빚어 청자를 만들고 살았다. 혈혈단신 남하한 삼팔 따라지의 아들로 태어나 머리도 수염도 생전의 아버지 보다 더 하얗게 세어버린 이 나이까지, 흙을 벼리고, 물레를 차고, 타래를 쌓아 형태를 만들고, 남들이 상상 못 할 이중투각등의 조각을 완성하고 유약을 입혀, 1000도가 훌쩍 넘는 불 속에 가두고, 기도하듯 밤을 새웠다.

빈그릇을 만들며 살아온 그의 세월이 그의 온 몸을 관통해 이제 가릴것도 감출것도 없어 아쉬움도 부끄러움도 없다. 헌데 그동안 그는 스스로 만든 빈 그릇 속에 무엇을 담고 싶었던 걸까?

"흙 하고의 인연이 남달랐다는 생각이 드네요. 경기공고에서 토목을 공부 했으니 흙 파먹고 살 팔자 였던거지요. 토목과를 졸업하고 측량기와 폴대를 들고 흙바닥을 뛰어 다니는데, 뭔가 갓쓰고 소 팔러 가는듯한 어색함이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청자를 마주친 순간, 그 천년의 벽이 열린 겁니다. 청자! 아니,내가 거기 우두커니 서서 나를 기다린 겁니다.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 순간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수많은 문헌과 싸우고 청자재현의 현장들을 찾으며 분주히 "김세용의 청자시대"를 살기 시작했다.

"삼팔 따라지"라고 부르는 혈혈단신 이북사람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독립군 DNA" 로 똘똘 뭉친 그는 오로지 자신의 현신이라고 믿는 "청자의 꿈" 한가지를 가지고 한 길로 매진했다.


외길은 외롭고 쓸쓸했고 특히 배고팠다. 허기질 때마다 그와 가족들은 그 당시 잘나가던 토목기사의 월급으로 배불리 먹고 적금들어 집도사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으랴!

그때, 식구들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던 비루한 남자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기업건설사에 토목기사로 취직만 하면 식구들이 편안 할 수 있었거든요. 당시는 건설붐이 시작 될 때니까, 그걸 못해주니 밥상머리에서 눈 마주치기도 괴로웠지요"

그 뻔한 바램을 못본채 하며 혼자만의 "청자시대" 를 살던 그는 덜컥 군대에 입대해 버리게되고 순전히 돈을 벌기위해 윌남 파병에 자원했다.


69년이다.

다행히 그는 전장에서 살아남아 대한민국으로 돌아왔고 사지에서 돌아온 그는 보급조차 없는 전쟁터인 대한민국의 "청자시대"를 다시 살기 시작했다.

식구라는게 밥상머리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랑들 이라는 뜻이다.


헌데, 이 밥상머리의 사람들에겐 언제나 평화가 요원했다.

"정말 갈등 이었지요.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는 자라고... 그래도 신기루같은 청자는 오락가락하고... 오죽하면 아내가 시를 쓰기 시작 하더라구요. 맨정신으로 견디기는 힘들었나봐요. 허허..."

웃는다. 지금은 웃지만 속을 끓이다못해 흐르는 물위에 글을 쓰는 심정으로 시를 쓰는 아내를 보며 그는 많이 울었다.


"그깢 청자가 뭐라고..." 


그렇게 혼자말을 하는 그의 말엔 진심이 1도 없다.

"그깢청자"에 홀렸던  토목기사 김세용은 지금 없다.


지금, 고려청자의 혼 불을 불러내 가마로 끌고 들어가서 스스로 청자의 빛깔이 되어 산화했다가 또다시 깨어나는 일을 반복하는 "청자귀신" 김세용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라의 관리들은 점잖게  그를 부른다. "청자명장 김세용" 이라고, 명장이라는 칭호가 공연히 멋적어 한마디 하는 그의 어색한 웃음이 허연 수염끝에 걸려 천진하다. 

"요즘엔 사람들이 명장! 명장! 하니까 우쭐한 생각도 듭니다. 천 평도 훌쩍넘는 내 작업장에서 일하고, 차도 마시고 멀리서 오는 콜렉터들에게 "청자의꿈" 도 말하고 특히 아들놈이 내 뒤를 잇겠다고 대학에서 내가 못배운 도예공부를 한다니 우쭐우쭐 해집니다."

"아버지 돌아기시기 전에 이런모습 보여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생전에 도자기꾼 자식 둔 보람을 못 보셨으니 ᆢ"

말끝을 흐리는 그의 시선끝에는 장엄한 금강산 비경이 담긴 청자가 우뚝서 있다.


"개성이 고향인 아버지의 소원인 금강산을 보여 드리기위해 11년 작업을 했는데 초벌구이만 보시고 가셨습니다. 저 금강산을 보셨으면 한이 좀 풀리셨을 텐데... 자식을 기다려 주시지 않고 꼭 한 걸음 씩 빠르시니..."

돈벌기 좋은 기술을 가지고 취직을 안하는 아들이 흙만 퍼다가, 먹을 수도 없는 사금파리만 구어대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때, 가슴이 폭폭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 와중에 애비 소원 이라고 도자기로 라도 금강산을 보여 주겠다니 대견은 했겠지만 매일 퍼대는 그 흙에다가 '배추씨라도 심어보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 않았을까?

지금 명장이된 김세용은 어쩌면 "청춘을 언제든 수술해도 상관없는 맹장신세"로 살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아무리 흙을 파도 돈나올 구멍이 보이질 않았으니까요! 집안 식구들은 제가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그야말로 "맹장"에서 "명장" 으로의 터닝 포인트는 2006년, '흙에서 빛으로!'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에서 부터 열리기 시작한다.

"흙이 뭡니까? 진심으로 들여다 보면, 흙 속 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있습니다. 너무나 다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거기 엉켜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이라는 결정으로 뭉쳐지고 수 천도의 열기 속에서 그 두서없는 시간의 분자들이 결합해서 하나의 결정체를 만듭니다. 세상에 없던 보석인거지요. 그냥 보석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들이 만나서 하나하나의 별이 되는 겁니다."

그가 플라톤처럼 말했다. "도자기는 철학이다!" 라고,


그리고 물었다.


"흙 속에 비산되어 있는 과거,현재... 미래의 시간에 시공을 가로 지르는 열기로 관통하고 융합 해내서 비로소 보석을 만들어 내는 이 일이 어찌 철학적이지 않냐?"고.

"대단히 철학적이다!"라고 황급히 대답했다.


참 다행이다. 

 

"너 자신을 알라!"까지는 안갔다.

역시 명장과의 대화는 긴장감이 있다.


지, 수, 화, 풍, 공이 본질인 자신의 작업을 그저 '빈그릇 만들기' 라고 말하는 명장 김세용의 말에는 그 빈그릇에 담고자 하는 바로 그 무엇의무게가 실려 있다.

그는 거기에 돈을, 명예를, 사랑조차도 담고자 하지 않는다.


그의 빈 그릇엔 오직,  "빛나는 비어있음"이 있고, 그것이 또 다른 천 년의 빛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고여있다.

그 간절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그의 등을 떠밀어 일을 재촉 한다. 지난 6월, 톱크라스의 예인들만 초대되는 통인화랑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친 그는 12월3일엔 대한민국명장전이라는 이름으로 인사가나아트센타가 그를 불렀다.


공예디자인진흥원 에서도 그의 "청자 보기" 를 청하고 해외에서도 "명장" 이라는 타이틀로 그를 보자한다.


그야말로 "명장김세용"의 전성시대다.


이럴때, 몸을 숙일 줄 아는 그의 지혜가 그를 진짜 명장이게 한걸까?

"명장" 김세용은 굽기전의 크기보다 최소한 14프로 이상 몸을 낮추어 작아지는  "청자"의 겸손을 기억하며 오늘, 가마의 불을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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