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내석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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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내석 사무국장. |
일반적으로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길을 따라 자연을 음미하며 걷기 때문에 고령자나 여성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처럼 트레킹의 가장 큰 장점은 실천의 문턱이 낮다는 점이다.
"이번 주에 금정산 등산하자"는 친구의 제안은 선뜻 응하기 쉽지 않지만, 부산 황령산 둘레길을 함께 걷자는 말에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느새 황령산 둘레길은 나에게도 익숙한 주말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곳에서 초록의 싱그러움을 호흡하고 건강한 땀방울을 흘리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그런데 발음은 비슷하지만 그늘진 이면을 가진, 결코 반갑지 않은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트래킹(tracking)이다.
산길 위의 트레킹이 생명의 숨통을 틔워준다면, 콘센트 구석 음습한 먼지 속에서 일어나는 트래킹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잿빛 재앙을 잉태한다. 본격적인 여름철을 맞아 우리가 시선을 돌려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트래킹'이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여름철 화재 원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전기적 요인이다. 절연열화, 과부하, 누전, 접촉불량 등 전기설비와 관련된 원인이 전체 화재 원인 중 40% 이상을 차지하며 부주의에 의한 화재보다도 높은 비율을 보인다.
폭염과 열대야가 일상이 된 오늘날, 에어컨과 선풍기, 제습기 등 각종 전기제품 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철 화재 예방의 출발점은 전기안전에 대한 작은 관심과 정기적인 점검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트래킹 화재다. 트래킹이란 전선이나 콘센트, 플러그 등에 습기나 먼지, 이물질이 부착되어 원래 전기가 흐르지 않아야 할 부분으로 전류가 새어 흐르는 현상을 말한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누설전류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절연물 표면이 까맣게 탄화(炭化)되고, 그 탄화된 틈을 따라 전류가 더욱 세차게 흐르게 된다. 결국 스파크와 발열이 발생하며 화재라는 거대한 불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가야 할 제 길이 있다. 산길을 걷는 트레킹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 인간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전기설비의 트래킹은 순리를 거슬러 본래의 궤도를 이탈하는 위태로운 일탈이다.
전기가 제 길을 벗어나는 순간, 문명의 편리함은 순식간에 재앙의 불씨로 돌변한다. 결국 여름철 전기화재 예방의 핵심은 만물이 제자리와 제 길을 지키게 만드는 '순리의 관리'에 있다.
여름철은 장마와 높은 습도로 인해 전기가 길을 잃고 헤매기 가장 쉬운 계절이다. 따라서 콘센트와 멀티탭 주변에 쌓인 먼지를 주기적으로 제거하고,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전기제품은 플러그를 뽑아 두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또한 노후되거나 피복이 손상된 전선은 즉시 교체하고, 누전차단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냉방기기 관리 역시 결국 열이 제 길을 찾도록 하는 일이다. 특히 에어컨 실외기는 장시간 가동 과정에서 많은 열을 배출한다. 실외기 주변에 종이상자나 폐기물 등 가연물이 쌓여 있거나 통풍이 원활하지 않으면, 갇힌 열기로 인해 화재 위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런 이유로 실외기 주변은 항상 비워두고, 실외기실의 환기창을 활짝 열어 열이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에어컨과 실외기를 연결하는 배선의 손상 여부를 살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기본이다.
최근에는 리튬이온배터리를 사용하는 제품들이 새로운 화재 위험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 휴대용 선풍기, 무선청소기, 전동킥보드 등 우리 생활의 기동력을 높여주는 배터리들은 고온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외부 충격을 받을 경우 격렬히 발화할 수 있다.
특히 한여름 밀폐된 차량 내부는 짧은 시간 안에 고열의 가마솥처럼 변하므로 배터리가 내장된 제품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증되지 않은 충전기를 사용하거나 과도한 충전을 반복하는 행위 역시 위험을 키운다.
결국 배터리 안전관리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에너지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되, 본래의 경계를 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다. 전기가 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세심한 관리가 곧 화재예방의 시작이다.
최근 일본 소방청도 여름철 화재예방대책의 주요 과제로 에어컨 실외기 점검과 리튬이온배터리 안전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폭염이 일상화되는 환경에서 새로운 전기화재 위험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우리 역시 전통적인 전기설비 관리의 틀을 넘어 일상 깊숙이 들어온 배터리 기반 제품에 대한 안전의식을 함께 높여야 한다.
더불어 여름철 기습적인 집중호우에 따른 화재 위험에도 깨어있어야 한다. 침수 피해를 입은 건축물은 배선과 전기기기의 손상 여부를 충분히 확인하기 전까지 전원을 공급해서는 안 된다.
물에 젖은 전기설비는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내부 절연이 손상되어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지성 호우가 잦아진 오늘날, 침수 피해 이후에는 전원을 복구하는 일보다 설비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
기후변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폭염과 열대야는 더 이상 일시적인 이변이 아니라 여름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편리함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이면에 도사린 안전관리의 책임도 무거워진다. 그러나 화재 예방의 출발점은 거창한 기술이나 특별한 장비가 아니다. 전기가 지금도 제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작은 관심과 점검, 그것이면 충분하다.
올여름 우리는 숲길과 둘레길에서 트레킹(Trekking)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자.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전기가 제 길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연 속에서는 길을 따라 걷고, 일상 속에서는 길을 벗어난 위험을 바로잡는 것. More Trekking, Less Tracking. 그것이 폭염의 계절을 안전하게 건너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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