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위대한 어머니에게 '훈장'을 바치는 남자!-박종근 편 -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6-09-21 14: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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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생각으로 일을 하는 21세기 독립군, 정육 전문가 박종근 대표에게 물었다.


“좋은 돼지는 뭘 먹습니까?”
“일단 좋은 물을 먹여야지요.”

박종근 대표의 대답은 반 박자 늦다.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느린 말투로 툭 던지는데, 듣고 나면 그 말이 오래 남는다.


“사료와 물이 중요합니다. 어떤 물을 마셨는지, 뭘 먹었는지, 어디에서 자랐는지, 밤낮의 일교차는 어땠는지 봐야 합니다. 소음이 심하거나 군부대 근처에서 잔반을 먹이는 농장도 저는 피합니다. 돼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기에 그대로 나타나거든요.”


사람이 살아온 이력을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돼지가 살아온 환경을 고기의 색깔과 결로 읽어내는 사람은 흔치 않다.


박종근 대표는 고기를 보면 그 동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좋은 사료와 물을 마셨는지, 햇볕과 바람을 제대로 만났는지, 비좁고 불안한 곳에서 자랐는지, 편안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았는지가 고기 안에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인지 그의 매장 입구에는 참으로 희한한 현수막이 붙어 있다.

“문신이 있거나 가출 경험이 있는 소·돼지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물었다.


“소가 무슨 문신을 합니까?” “돼지가 가출도 합니까?”


직원들은 당황했지만 박종근은 태연했다.


“나쁜 환경에서 자라 상처나 질병이 있고 멍이 든 고기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이동과 도축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고기는 맛도 떨어지고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그걸 재미있게 알리려고 상징적으로 쓴 말이지요.”


세상에 나쁜 소나 돼지는 없다.


다만 나쁜 환경이 나쁜 고기를 만든다.


박종근의 고기 철학은 명쾌하지만 까다롭다.


“그냥 고기를 썰어 파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고기를 철저하게 만들어 좋은 마음으로 팔아야 한다.”


푸줏간 아버지가 남긴 유언.


박종근은 충남 홍성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홍성은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난 곳이며 만해 한용운 선생의 고향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푸줏간을 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종종 물었다.


“네가 돈을 벌면 무엇을 할 것이냐?”


아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자신의 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돈을 벌면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선생의 집에 좋은 고기라도 가져다드리고 싶다. 그분들은 우리 대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분들이다. 그 은공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버지는 고기를 팔아 번 돈에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좋은 고기를 팔아 번 돈이라면 귀한 사람을 위해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어린 박종근의 가슴속에서 오랫동안 숙성됐다.


세월이 흘러 그는 정육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대기업에서 정육 사업을 십수 년 동안 익혔고, 현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공부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정육 공장을 운영하고 매장도 열었다.


40년 넘게 고기를 만졌지만 그는 지금도 좋은 고기를 찾아 농장과 도축장을 직접 뛰어다닌다.

 

그의 정육 공장은 쉬는 날이 있어도 매장은 365일 문을 닫지 않는다.


“명절날에도 매장을 닫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귀한 분께 드리려고 고기를 사러 오는데, 그저 그런 고기를 가져가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의 말에는 장사꾼의 계산보다 아버지의 당부가 먼저 들어 있었다.


“좋은 고기를 만들어 좋은 마음으로 팔아야 한다. 그리고 귀하게 번 돈을 귀한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


아버지가 남긴 말대로 아들은 그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박종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 뜬금없이 물었다.

“안중근 의사를 아십니까?”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아십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안중근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를 길러내고, 죽음 앞에 선 아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당당히 죽으라고 말한 어머니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어머니의 이름은 조마리아다.


조마리아는 단지 안중근을 낳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안중근·안성녀·안정근·안공근, 3남 1녀를 낳아 독립운동의 길로 이끈 독립운동가였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고,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돌보며 상하이 독립운동 진영의 정신적 어머니가 되었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고 항소를 고민할 때 조마리아는 아들에게 말했었다.


“네가 공소한다면 왜놈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된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옳다.”

그 말이 무슨 뜻일까?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 죽어라!”라고 말한 어머니는 그 후에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을까.


박종근은 그 이야기를 읽으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의 눈물 속에는 안중근과 조마리아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의 뜻을 아직 제대로 잇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함께 들어 있었다.


조마리아는 1927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교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만국공묘 월남묘지에 안장됐지만, 도시 개발로 묘지가 사라져 지금은 무덤의 위치조차 찾지 못한다.


아들의 유해도 찾지 못했고, 어머니의 무덤도 잃어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남긴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좋은 고기를 다듬어 바치는 ‘어머니의 훈장’ 이번 추석에도 안중근의사 추모단체를 찾아 최고등급의 한우 고기를 바쳤다.


“제가 이 땅의 위대한 어머니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박종근이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명절이 되면 정말 좋은 고기로 상을 차려드리고 싶습니다. 위대한 아들을 키운 어머님께 갈비찜도 올리고 산적도 만들어 올리고 싶어요. 그분들이 받아야 할 대접을 나는 좋은 고기로 해드리는 겁니다. 그게 제 나름의 독립운동입니다.”

고기를 팔아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남자.


처음 들으면 엉뚱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립운동은 반드시 총을 들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 가족을 존중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그 은혜를 갚는 일도 독립운동의 연장일 것이다.


그는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드릴 갈비찜과 산적을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가 위대한 아들에게 주는 훈장 같은 갈비찜.


아들이 위대한 어머니께 다시 바치는 훈장 같은 산적.


그 마음에서 생각해낸 일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훈장’이다.


이 훈장은 쇠로 만들지 않는다. 금이나 보석을 붙이지도 않는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가장 좋은 고기, 자식이 어머니께 차려드리고 싶은 가장 따뜻한 밥상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바치는 훈장'은 아버지에게 한 약속이며, 우리가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위대한 어머니들께 올리는 감사의 고백이다.

고기는 한 생명의 이력서다.


“고기가 다 고기서 고기지.”


박종근은 예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상대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피하는 대신 설득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고기가 있습니다. 불행하게 살다 그 흔적이 몸에 각인된 멍든 고기와, 좋은 물과 사료를 먹고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란 생생한 고기입니다. 소비자는 겉만 보고 그 차이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 년 내내 좋은 농장과 도축장을 찾아다니는 겁니다.”

그에게 고기는 죽은 살점이 아니다. 한 생명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좋은 고기는 좋은 환경에서 나오고, 좋은 환경은 그것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의 양심에서 나온다. 그래서 그는 좋은 고기를 파는 일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


좋지 않은 것을 거절할 줄 아는 용기.


자신이 번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아는 염치.


그가 고기를 고르는 기준과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은 다르지 않다.


“참으로 위대한 아들과 어머니들이 계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중근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총을 들었다. 조마리아는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아들에게 당당히 죽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100여 년이 넘게 흐른 지금, 박종근은 정육 칼을 들었다.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가르고, 양심적인 생산과 값싼 욕심을 구별하며, 자신의 이익을 나누어 위대한 어머니들의 훈장으로 바치기 위한 칼이다.


그는 이 시대의 독립을 이렇게 말했다.

“정의로움과 부끄러움을 아는 정신의 독립, 자기 힘으로 가족과 주변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의 독립, 그리고 위대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독립정신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묵묵히 고기를 살폈다. 색깔을 보고, 지방의 결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개체가 살아온 환경을 짐작했다.


남들보다 좀 늦게 말하고 세상과 조금씩 엇박자를 내는 사람. 그러나 그가 가는 방향만큼은 정확해 보였다.


돈을 벌되 부끄럽지 않게 벌고, 그리 번 돈으로 귀한 사람을 섬기는 것.


푸줏간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한마디가 40년 동안 숙성돼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어머니에게 바치는 훈장.’


그 훈장은 그의 가슴속에서 매일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박종근 대표에게 독립운동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가 충청도 사람답게 반 박자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좋은 고기 팔아서 귀한 분들 모시는 거지요. 뭐…”


그의 칼이 다시 민첩하게 움직였다.


“내가 말이 느린 거지 동작은 빨라유…”


그날 좋은 고기를 파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위대한 어머니께 훈장을 바치는 21세기 독립군 한 사람을 채집해 왔다.


그는 고기를 파는 상인이 아니다.


오직, 기쁨을 파는 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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