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컬트 무비’라는 것이 있다. 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영화에 열광한 나머지, 영화를 보는 일이 마치 신성한 제의와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때, 그것을 컬트 무비라 일컫는다. 내게, 혹은 나와 비슷한 열정으로 ‘명동백작’을 보았던 사람들에게, 그 드라마는 그런 열광적인 관극 체험을 가능케 했었던 것 같다.
‘명동백작’ 때문에 나는 내가 존경하는 두 분과 원치 않는 뜨거운 논쟁을 한 적도 있다. 그 두 분들 역시 그 프로그램의 골수팬이었던 까닭이다.
첫 번째 논쟁은 이런 것이었다. ‘명동백작’은 1950년대 문화인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조명한 작품인데, 자연히 거기에는 당시로서는 평균적이라 할 수 없을 문화인들의 일상도 잘 조명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다방문화’라는 것이다. 1950년대라면, 한국전쟁 직후의 그야말로 ‘폐허’와도 같은 현실이 지배적이었을 터인데, 그 드라마 속의 문화인들은 기껏해야 ‘다방’에서 시가 어떠니 문학이 어떠니, 그렇게 커피나 술을 마시며 떠들고 앉아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그들을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내가 존경하는 사회학자인 한 선배의 항변이었다. 그 선배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당시의 평범한 시민들은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말이지!”
일리 있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생존의 기반 자체가 험악한 상황에서, 가령 시인 박인환 식의 ‘버지니아 울프’를 읽거나, 또는 ‘목마를 타고 간 숙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현실의 편에서 보면, 철딱서니 없는 몽상이자 현실에 대한 무책임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문화인들이 그 험악했던 ‘시민’들의 악다구니의 삶과는 전혀 다른 중산층의 삶을 살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문화인들에게도 1950년대의 평균적인 궁핍은 동일한 조건이었다.
물론 가령 이승만이나 이기붕 등의 문민 독재권력에 야합하여 호가호위한 문화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개는 시인 김수영의 경우처럼 생존의 벼랑 끝에서도 오히려 ‘자유’나 ‘혁명’과 같은, 인간성의 좀더 높은 경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현실의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문화인들은 그것이 다소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이상주의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의 고통을 방기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상황의 고통을 뛰어넘어 더욱 완전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희구하는 ‘꿈꾸는 존재’로서의 본능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두 번째 논쟁은 시인 김수영에 관한 것이었다. 왜 이 드라마 속의 시인 김수영은 그렇게 히스테릭하게 그려졌느냐는 것이다. 김수영 뿐인가. 화가 이중섭이 그러하고, 시인 박인환과 김관식 역시 그런 문화인으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런 질문을 내게 던졌던 존경하는 친구에게, 드라마 속의 김수영은 히스테릭한 것이 아니라 지금 속으로 울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치부 기자인 한 친구가 하는 말이 그렇다면 도대체 김수영은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수영의 울음은 두 차원의 대답을 준비하게 만든다. 첫 번째 차원의 대답은 1950년대라는 시대적 성격에 힌트가 있다. 시인 김수영을 보더라도, 그는 의용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수용소에서 반공포로 생활을 했고, 석방이 되었지만 지속적인 ‘레드 콤플렉스’로 고통 받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한국전쟁의 체험은 ‘인간’을 이념에 희생된 동물의 차원으로 하강시켰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음식을 먹었던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이 그 ‘한 줌의 이념’ 때문에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죽였던 전쟁의 체험은 민족 전체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김수영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두 번째 대답은 예술가가 꿈꾸는 자유의 속성이란 비타협적인 완전성에 있는데, 1950년대라는 상황 속에서 이런 꿈은 처절한 몽상에 불과했다는 점에 있다. ‘평화통일’을 외치는 일조차 용공으로 내 몰려 죽임을 당했던 것이 1950년대라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 안에서 예술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완전하고 비타협적인 예술적 자유는 질식상태에 처한 것이다. 그러니 김수영은 4.19 전후의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명동백작’의 195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의 이 시간대에 김수영이 다시 살아온다면 그는 종달새처럼 명랑하게 현실을 긍정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지구화의 시대라고 많은 사람들이 떠들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의 이념 시계는 아직도 1950년대라는 과거에 멈춰 있다.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은 대륙과 연결된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의 상상지도 속에서는 휴전선 이남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인 것이다.
이 ‘정신의 섬나라 근성’을 제도적으로 강제하고,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삼대에 걸쳐 대물림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시대착오다. ‘명동백작’에서의 김수영의 눈물은 21세기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이제 시계를 21세기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 김수영의 눈물이 멈출 수 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로컬거버넌스] 경남 합천군, 쌀 산업 위기 극복 팔걷어](/news/data/20251119/p1160278499965424_411_h2.jpg)
![[로컬거버넌스] 경남도교육청, 올해 ‘공동 수학여행’ 성공적 마무리](/news/data/20251118/p1160278826050924_127_h2.jpg)
![[로컬거버넌스] 부천시, 매력적인 도시공간 조성 박차](/news/data/20251117/p1160308292200179_732_h2.jpg)
![[로컬거버넌스] 전남 영암군, ‘에너지 지산지소 그린시티 100’ 사업 추진](/news/data/20251117/p1160278744105355_303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