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집에서 쉬는 날, 아이들 방을 들여다 보니 전기 콘센트에 어댑터가 이만저만 어지럽지 않았습니다. 보기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아주 위험하지요. 정리할 결심을 하고 당장 멀티탭을 방마다 한 개씩 사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벌이고 보니 책상에 책꽂이에, 심지어 침대까지 건드려야 했습니다. 또 건드리고 보니 구석구석 먼지가 장난 아니더군요.
결국 진공청소기와 물걸레가 등장하고 마치 봄맞이 대청소 분위기가 돼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제 집사람 왈, “아니 지금 애들 시험이 내일 모렌데, 공부하게 가만 놔두지, 왜 쓸데없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아 애들 공부 방해하느냐, 시험 다 끝나고 해도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집안의 안전과 미관을 위해 개혁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집사람은 저를 공부 방해꾼 취급하면서 저의 개혁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아마 이런 경우에는 제가 미리 집사람에게 얘기해서 동의를 얻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사실 미리 말 안 한 데에는 제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니 왜 내가 옳은 일을 하는데 마누라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해?’라는 식의 마초주의나, ‘오늘 아니면 내가 시간이 없어, 내친 김에 당장 해치우지 언제 또 하겠어?’라는 생각도 무의식 중에 했겠지요.
그러나 제가 미리 말했으면 집사람이 하긴 해야 하지만 애들 시험 끝나면 하자든가, 제가 없더라도 자기가 애들이랑 같이 하면 된다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저는 그동안 우리가 추진했던 개혁도 이렇게 좀 더 설득과 동의를 통해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일보와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문득 논조도 싫고 돈도 아깝고 해서 ○○일보를 끊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안된다는 겁니다. 그 신문이 아이들 공부하는데 필요한 정보나 기사가 제일 많거니와 논술 수업 시간에 그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가야 한다는 겁니다. 정 끊으려면 별 볼 거리도 없는 △△신문을 끊으라고 버텼습니다. 아니 어떻게 ○○일보를 두고 △△신문을 끊으라고 하나... 약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신문을 놓고 저는 이념의 문제로 본 반면 집사람에겐 실용성의 문제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타협안으로 내놓은 게, 앞으로 그 신문의 사설은 아이에게 안 읽히는 것이 어떠냐, 확실히 어떤 편향(bias)이 있는 게 사실아니냐, 대신 보는 건 계속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제가 타협하지 않고, ‘무슨 소리야, 그 신문이 얼마나 편향된 신문인데 무조건 끊어 버려야지, 그런 신문에 실린 정보가 알차면 얼마나 알차겠어?’하고 제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집사람은 또 다시 저를 ‘교육 현실도 모르면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아이 공부를 방해하는 불량 아빠’ 정도로 속으로 낙인찍었을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추진했던 개혁입법안도 그런 것 아닐까요? 이념적 개혁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실용적 차원에서의 개혁이라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지요. 예컨대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악법이란 이념적 측면과 함께, 탈냉전시대 남북간 교류 협력에 걸림돌이라는 실용적 측면도 있었던 겁니다.
요컨대 개혁은 옳으냐, 그르냐의 차원과 함께 그게 필요하냐, 필요치 않냐의 차원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꾸 옳고 그름으로 모든 걸 재단해버리면 All or Nothing, 全部 아니면 全無가 됩니다. 그래서 실용주의적 접근을 해야 전부를 얻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필요한 만큼이라도 건져낼 수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것이 우리사회를 반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지금 방법적으로는 설득과 동의를 좀 더 앞세우자는 것, 그리고 관점이나 접근법에서 이념주의적 접근보다는 실용주의적 접근도 필요하다는 얘길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제 어느 TV 토론에서 어떤 분이 ‘실용 노선은 개혁을 아예 포기한 것이자 보수 우경화이고 비겁한 기회주의적 태도’라고 했습니다. 뭐 좋습니다. 그 분은 시민단체에 계시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현실정치권, 더욱이 집권여당에 몸담고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사회적 환경을 가진 국민들이 모두 희망을 가지고 앞날을 설계하고,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집단이나 생각을 함부로 재단하고 비판하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앞으로 참여정부나 우리당이 ‘설득과 동의를 통한 개혁, 실용주의적 접근을 통한 개혁, 나아가 사회경제적 영역에서의 개혁,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개혁의 포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자꾸 비난하는 게 오히려 담론정치적 관점에서 개혁의 큰 흐름에 마이너스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개혁진영에서는 한번쯤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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